Los Angeles

Partly Cloudy
57.2°

2018.11.14(WED)

Follow Us

[중앙 칼럼] 밥 안하는 여자의 불안

신복례 / 외신담당 부장
신복례 / 외신담당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2/1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2/12 18:07

며칠 전 LA 한인타운에서 일하는 여자 다섯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4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까지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자기 손으로 음식을 잘 해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노모가 됐든 남편이 됐든 식당 투고 아님 마켓 반찬이 됐든 주로 남에게 얻어먹고 사는 여자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예전에는 엄마의 집밥이 정답이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엄마의 집밥, 50대 이상만 해도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돼지고기를 썰어 넣어 끓인 엄마의 김치찌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엄마가 손으로 쭉쭉 찢어 숟가락 위에 얹어줬던 김장김치는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였다.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엄마의 소박한 밥상은 그리운 추억을 타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으로 기억되곤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네 가정에서 집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예전만큼 집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게 된 이유가 크지만 음식 만드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려서 아버지는 그랬다. 엄마가 설거지라도 시키면 왜 아이 공부하는데 설거지를 시키냐고. 엄마들은 또 그랬다. 나같이 집안에서 밥만 하는 여자는 되지 말고 사회에 나가 자기 일을 하면서 대접 받고 살라고.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60~70년대 생들 중에는 어려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컸다거나 결혼하기 전까지 밥 한번 해보지 않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엄마가 해준 음식이라고 말할 아이가 얼마나 될까. 나중에 나이 들어 추억으로 떠올릴 엄마의 음식이 있기는 할까.

한국에선 집밥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 들어선 건 집밥 같은 음식을 내세운 식당들과 누구누구 집밥을 이름으로 내건 편의점 도시락이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는 학생들 뿐 아니라 직장을 찾는 취업준비생, 바쁜 남녀 직장인, 부인에게 밥 달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50대 이상 남성들이 편의점 도시락의 고객들이고 편의점 도시락은 이들 입맛에 맞춰 메뉴를 다양하게 하며 열풍 수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직접 해먹건 누군가에게 얻어먹건 누구나 따뜻하고 맛있는 갓 만든 집밥을 먹고 싶어한다. 아무리 맛있어도 밖에서 만든 음식은 며칠만 먹으면 질린다. 그래서 남자들이 음식을 하기 시작했고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집밥 열풍을 일으킨 것도 그런 시대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밥 백선생'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집에서 얻어먹지 못하고 요리는 할 줄 모르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중장년층 남성들에게 쉽고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가르쳐주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요리를 하는 남성이 제법 된다. 집밥 백선생 덕분에 나도 얻어먹는 여성 대열에 올랐다. 그런데 잊고 있었다. 주방의 파워,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가정의 대장이라는 것을.

예전 엄마들은 집에서 살림만 했어도 아버지들이 눈치를 봤고 중요한 순간 큰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바로 밥을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사갈 때 버리고 갈까 남편들이 강아지를 꼭 안고 가장 먼저 이삿짐차에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밥 때문에 나온 얘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얻어먹어서 좋긴 한데 걱정도 된다.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이러다 나이 들어 이사갈 때 세끼 밥 해주기 싫다고 버리고 가지나 않을지. 얻어먹는 사람은 잘해야 한다.

관련기사 중앙 칼럼

오늘의 핫이슈

Branded Content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