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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 한 바탕 봄 꿈

1년 만에 한국을 갔다. 그 사이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그 대통령은 공상 과학영화의 끝판대장과 같던 인물을 판문점에서 만났다. 한반도 봄은 미세먼지가 베일을 쳤다. 조카들은 마스크를 쓰고 놀이터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또한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20대 청춘들은 검은색 마스크로 패션을 뽐냈다. 친구들은 여전히 회사 회식으로 저녁까지 바빴다.

일정 바쁜 대선 후보 마냥 이 도시 저 도시를 누볐다. 가족행사를 치르고 간 첫 도시는 장인의 고향 경남 진해였다. 창원시 소속으로 바다를 제압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위해 만든 군사 전략 도시라 그런지 곳곳에 일제 가옥이 남아 있었다. 장인은 365개 계단을 걸어 제황산에 올라 어릴적 다니던 초등학교와 청년기 허기를 채우던 전통시장을 소개했다. 그 시장 골목길에는 79살의 노모와 교사를 퇴직한 아들이 돼지국밥집을 지키고 있었다.

경북 영천, 아버지의 선산을 찾았다. 장면만 있고 인상은 없는 어르신들의 묘소 앞에 무심히 절을 올렸다. 심경이 복잡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조상과의 만남. 감사, 슬픔, 그리움 가운데 어떤 감정을 소환해야 하나. 고요한 봉분에서 송홧가루만 날아 나의 운동화에 쌓였다.

여행 관련 독립 서점을 찾아 차를 몰고 서울을 쏘다녔다. 마포구 대흥동과 염리동. 찾아간 서점 네 곳 중 두 곳은 이미 문을 닫거나 책 판매를 접고 있었다. 나름 수년간 대학생활을 하던 곳인데 몹시 낯설었다. 차 한 대가 이리저리 고개를 하며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샛길. 오르막길에서는 오프로드 차량을 운전하듯 손에 땀이 고였다. 좋은 책을 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느낌있다'는 문래동 예술촌 허름한 식당에서 후배 기자와 술을 마셨다. 모처럼 3차까지 갔다. 적당한 소음, 지난간 이야기, 책임도 지지 못할 말이 오갔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다음날 남편의 숙취 때문에 아내가 고생을 했다.

난생 처음 차를 몰아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신항으로 달렸다. 멀리서 본 산마을은 야생화 같았고 펄밭은 숲 없는 밀림이었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세월호 사건의 전과 후로 나뉜다. 말 못할 충격과 허무, 무기력과 원망, 나는 아니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기적과 희망. 도착한 목포 신항의 거대한 배는 뒤집혀 말이 없었다. 강한 바다 바람에 철조망에 달린 세월호 노란 리본은 나비처럼 일제히 파르르 날렸다. 미안한 마음을 노란 리본에 적어 철조망 제일 높은 곳에 매달았다. 평일 낮 다른 방문객도 있었다. 그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을 찾았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고향 울산은 참 낯설었다. 보통 선거철이 되면 보수당 후보들이 서둘러 나와 대형 현수막을 걸곤 하는데 올해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여당 후보들의 파란색 현수막이 로터리 주변 고층빌딩마다 빼곡하다. 성급한 걱정도 한다. 바람을 타고 수준이 떨어지는 후보가 당선돼 지방 정치를 헤치지 않을까.

짧은 시간 동안 졸지에 한반도 로드트립을 했다. 헤어지는 날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렸고 장인과 장모는 언제 돌아올 것이냐며 재촉했다. 비행기 좁은 좌석에 몸을 싣고 날아온 LA. 나는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였고 아내는 몸통만한 카펫용 청소기를 돌렸다. 봄 꿈 같다.


황상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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