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아직 못 보낸 아내…2350일의 '사부곡'

6년반전 사별한 아내 묘지
매일 찾아가 지킨 김진완씨
6시간동안 노래부르고 대화

1966년 단돈 25달러 결혼식
47년간 싸움없던 잉꼬 부부
"혼자 누운 아내 안쓰러워"
60년대 이민온 1세들 단면

아내와 사별한 김진완씨가 묘지에서 아내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아내와 사별한 김진완씨가 묘지에서 아내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행여나 올까 창문을 열면, 또 한 송이의 꽃 나의 모란. 기다려 마음 저려 애타게 마음 저려. 이 밤도 이 밤도 달빛을 안고 피는 꽃."

김씨가 생전의 아내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베넷 김씨]

김씨가 생전의 아내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베넷 김씨]

조두남 선생이 작곡한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이다. 김진완(81)씨가 사별한 아내를 그리며 부르는 단골 노래다. 오후 1시가 되면 김씨는 매일 아내가 있는 사이프리스의 포리스트론 공원묘지를 찾는다. 아내가 떠난 지 6년반. 그동안 단 12일을 제외하곤 매일 묘지를 찾았다. 5일까지 2350일째다.

비가 오는 날에도 예외는 없다. 김씨는 묘지 앞에 의자를 펼치고 앉아 아내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말을 건네고 잔디를 깎아준다. 평소엔 오후 7시까지, 해가 짧은 겨울엔 오후 6시까지 아내 곁을 지킨다.

지난 2012년 12월17일 김씨는 아내 바니 김(당시 72세)씨를 갑작스레 잃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1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 의사는 병명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원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아내를 눈 앞에서 순식간에 잃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1964년 한국의 교회 성가대에서 처음 만났다. 첫눈에 반했던 김씨는 이듬해 단돈 50달러를 들고 먼저 미국에 왔다. 1966년 뒤따라온 아내와 미국에서 결혼했다. 가난했던 부부가 결혼식에 쓴 비용은 고작 25달러였다.



그후 47년 결혼생활 동안 김씨는 아내와 다툰 적이 한 번도 없는 잉꼬부부였다. 김씨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고,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았다. 특히 아내는 나의 작은 행동에도 크게 칭찬해주며 나를 치켜세워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여행을 좋아해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는데, 다른 부부들과 함께 다닌 적이 없다. 항상 아내와 나, 둘만 다녔다. 우린 늘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아내 바니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6년 가까이 척추가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다.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 아내를 위해 김씨도 외부활동을 줄였다. 김씨는 "내가 집에 있을 때조차 아내는 나와 몸이 닿아있길 원했다"며 "묘지에 누워있는 아내가 혼자서 외로워할 텐데 내가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느냐"며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저녁 어스름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와의 동행은 계속된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뉴스를 시청한 후 밤 10시가 되면 아내의 사진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본다. 딸이 만들어준 영상이다. 김씨는 "아내가 젊었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사진들을 모아둔 영상이다. 정말이지 6000번은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를 잊지 못하는 김씨를 바라보는 아들은 걱정이 크다. 아들 베넷 김(46)씨는 "아버지가 종종 '너무 슬프다, 아내 곁으로 얼른 가고싶다'고 하실 때면 속상하다"며 "수면제를 복용하시면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했다.

김씨의 사부곡은 1965년 수정이민법에 따라 열린 이민 문호로 태평양을 건넌 한인 1세들의 현재 단면이다. 고령에 배우자 없이 홀로된 1세들의 삶은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외로움은 아들 베넷 김씨에게 인생 전환점을 만들어줬다. 시니어거주지 개발업자인 베넷 김씨는 아버지와 비슷한 처지의 시니어들을 위한 시설을 직접 지었다. 다음달 LA한인타운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에 개장하는 노인 요양시설 '선베이 시니어클럽'이다.

김씨에게 앞으로도 아내의 묘지를 계속 찾을 거냐고 물었다.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가야지. 아내가 살아있을 땐 항상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늘 꼭 붙어있었던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던 것 같아."

김씨는 아내가 쓰던 물건들을 아직도 치우지 않고 있다.


홍희정 기자 hong.heejung@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