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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멸치 두 마리의 행복

“오늘은 뭘 해 먹지?” “맛있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해줬잖아.” “돼지고기 말고 멸치 넣고 한 거 말이야.” “거기 다 들었어. 고깃가루도 멸치 가루도 다 들은 거야” “아니 통멸치 넣고 끓인 거 말이야.” “그까짓 통멸치, 맛 우러나고 나면 지저분해서 다 건져버려야 하는데 왜 그래?” “난 그 멸치가 맛있어. 아무리 국물로 다 빠져도 씹어봐. 씹을수록 맛 나는 게 멸치야. 김치 한 조각에 멸치 반쪽 얹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그이가 통멸치를 좋아하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한동안 고깃가루와 멸치 가루만 넣고 끓여준 데 대한 불만이다. 하긴 그가 멸치 찌개에 대해 쓴 시도 있었다.

“등심도 안심도 갈비도/ 메인주 왕게고 랍스터도 싫다/ 영계백숙이고 장어고/ 낙지고 대구찜이고/ 깐풍기고 류산스고/ 다 그렇고 그래/ 얼큰한 김치찌개 속 남해 멸치 두 마리/ 머리 떼고 똥 빼고 둘로 쪼갠 통멸치/ 반쪽에다 걸치는 포기김치 한 가닥/ 아 꿀 같은 멸치 두 마리 때문에/ 밥 한 주걱 찬물에 더 만다/ 밥도 그렇다/ 현미에 조에 찰수수에 콩에 보리에/ 팥에다 녹두라 (…) 새를 보면 안다/ 가벼이 날고 싶거든/ 새같이 살거라이” -멸치 두 마리의 행복

이 시가 언젠가 어느 주간지 안 표지에 크게 실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편집인도 그이와 똑같은 추억이 있었나 보다. 우리 집 아래 위층 냉장고엔 멸치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장에 가서 멸치만 보면 집고 또 집는 탓이기도 하지만, 연말이면 잔 멸치, 굵은 멸치 꼬박꼬박 보내주는 친구가 있어서도 그렇다.



그의 시처럼 남해 대변항, 전국 멸치 어획량의 60%를 차지하는 항구. 비옷에 모자와 장화,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어부들. “얼씨구 좋을시구, 으싸 으이쌰, 어기영차” 노랫가락에 맞춰 그물을 털면, 거짓말 조금 보태 꽁치만한 왕멸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은빛 비늘 휘날리며 떨어진 왕멸치들을 잽싸게 주워 담는 아낙네들. 갈매기도 빠질세라 이 잔치에 모여드는 항구, 머리와 꼬리가 제대로 붙어있는 싱싱한 왕멸치는 양쪽으로 살짝 살을 떠서 생 멸치회로, 또 갖가지 채소에 양념을 넣어 버무려 놓으면 유명한 대변항 멸치회가 되고, 더 튼실한 놈들은 골라 고등어나 참치처럼 석쇠에 구워 왕 멸치구이를 하고 남는 건 팔딱팔딱 뛸 때 천일염에 버무려 즉석 젓갈을 만든다.

멸치야말로 몸통, 꼬리, 뼈까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는 물고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물고기에게 준 이름을 보면 어이없다. 업신여길 멸(蔑)에 내던져질 치(致), 그래서 멸치가 된 것이다.

사람의 등뼈는 26개, 멸치 뼈는 44~47개, 사람보다 더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미안해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 칼슘왕. 그렇다. 멸치는 사람의 몸을 돌며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혈전을 예방해 혈압을 낮추어주고, 심장근육도 강화해 준다니 우리 나이엔 꼭 필요하다.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가루 조미료를 끊고 꼬박꼬박 왕 멸치 잘 다듬어 넣고 김치찌개 끓여주어야겠다.

“마누라 아니면 누가 날 이렇게 먹여주나.” 안 하던 소리 가끔 하는 걸 보면 철 좀 들었나 보다. 이만큼 철드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김령/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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