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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스토리] 화염에 휩쓸린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

배문경
김앤배로펌 공동대표변호사·국제와인전문가(WSET 레벨3)

사망자 최소 42명, 주택과 빌딩 등 완전히 불에 탄 부동산 7000채, 피해 면적 20만 에이커. 지난 8일부터 캘리포니아 일대를 뒤덮은 화마가 남긴 상처다. 특히 나파와 소노마, 그리고 멘도치노 등 3개 카운티의 피해가 컸고, 산타로사 지역의 피해 면적만 3만6000에이커에 달하며 이 지역에서만 주택 2800채가 불탔다. 이들 카운티 역사상 가장 큰 화재 참사다. 거대한 불덩이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부가 서로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려다 숨지기도 했다. 60대 부부는 자기 집 수영장에 6시간 동안 숨어 있다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엄청난 화마가 남기고 간 슬픈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이 미 전역을 휩쓸었다.

이번 화마에서 큰 상처를 입은 나파와 소노마, 멘도치노 카운티 등은 미국에서 가장 큰 와인 산지 중 하나여서 와인 애호가들은 더 큰 아픔과 슬픔에 잠겼다. 캘리포니아주의 와인 산업의 규모는 연간 340억 달러, 와인 외에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관광 수입까지 합치면 580억 달러에 달한 다. 와인 산업은 매년 캘리포니아주에 우리 돈으로 60조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화마는 와인 산업, 나아가 캘리포니아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셈이다. 캘리포니아 포도 재배 지역 25만 에이커 중 약 10만 에이커 정도가 나파와 소노마 카운티에 몰려 있다.

캘리포니아에 크고 작은 양조장이 4700개 정도가 있지만 규모가 크고 유명한 와이너리는 나파와 소노마 카운티에 몰려 있고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 와인 산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파 지역은 올해 포도 수확의 약 80%에서 85%, 소노마카운티는 89% 수확을 마친 시점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다. 또 캘리포니아 지역의 와이너리는 물을 대는 시스템, 즉 관개시스템이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포도밭들이 건조하기보다는 약간은 젖은 땅에 가까워 불길이 많이 번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파카운티에 와이너리가 많지만 직접적 피해를 입은 와이너리는 50개에 조금 못 미친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과 3남이 경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다나 에스테이츠'도 화마가 비껴감으로써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330개 와이너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나파밸리 와이너리협회가 직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피해를 입은 와이너리는 50개에 조금 못 미쳤고 회원 와이너리들은 90% 수확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나파카운티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와이너리가 회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와이너리는 그래도 피해가 적은 것이다.



그러나 불타지 않아 직접적 피해를 면했더라도 치솟는 불길로 전체적으로 이 일대의 기온이 올라갔고,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연기가 포도밭 전체를 뒤덮었다. 이는 화마의 간접적 피해로 불길은 피해도 불길의 여파에 따른 손실은 매우 커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수확한 2017년 포도를 으깨는 과정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고, 숙성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와인 탱커들은 정전이 됨에 따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가 되고 말았다. 특히 큰 문제는 화염에 따른 연기와 매캐한 냄새, 흔히 불이 났을 때 불쾌감을 주는 연기가 모든 포도밭을 감싸고 있고, 와이너리 곳곳에 깊숙히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포도나무가 연기에 질식된 것이다. 따라서 2017 빈티지는 그 어느 빈티지보다도 친환경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라는 역설적 전망까지 나돈다. 매연 때문에 당연히 더 스모키해질 수밖에 없고 연기에서 나오는 탄소, 질소, 황산 등이 유발하는 스파이시한 맛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화마의 간접적 피해는 올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그 심각성은 더하다. 아마도 올해, 그리고 앞으로 2~3년간은 그동안 캘리포니아 와인에서 맛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면을 접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산불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은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 온난화이다. 지난달 미국 평균 기온이 섭씨 19도로 예년보다 1.4도나 높았다. 반면 지난달 미국 전체의 강수량은 60밀리미터에 불과, 기상 관측 123년 만에 세 번째로 건조한 날씨였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미국 전체가 건조해졌고, 불이 나자 마른 낙엽을 태우듯 순식간에 산 전체가 가마솥으로 변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와인 산업의 피해, 특히 화재로 인한 피해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주에서부터 시작됐다. 신대륙 와인의 대표적 산지인 호주에서는 2003년 캔버라 지역의 산불로 400만 달러 피해를 입었고, 2004년에도 불이 나 700만 달러 피해를 입었다. 이 모두가 지구온난화로 땅 전체가 건조해지면서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하지만 호주 와인 산업의 피해를 이번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피해와 비교하면 코끼리에 비스켓 격으로, 캘리포니아주 산불 피해가 더 크다. 바로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됐지만 그 협약은 깨지기 직전이고 온난화는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예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파카운티와 소노마카운티 와이너리에 복구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부 와인 애호가들은 이들 카운티에 복구자금을 기부하기도 한다. 과연 올해 캘리포니아 와인 맛은 어떨까? 이 지역 와인을 한 병씩 사서 즐기는 것, 그것이 와인 애호가들의 또 다른 의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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