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살며 생각하며] 아름다운 폐업

보일러, 배큠, 컴프레서…하루 종일 붕붕거리는 기계 소리로 시끌벅적대던 가게 안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 마저 감돈다. 직원들이 쉴 새 없이 옷을 다려내던 프레스 기계들은 한가롭게 벽에 기대 서 있고 윙윙거리며 하루 수백벌을 세탁하던 독일제 드라이크리닝 기계도 가게 뒷편에 묵묵히 서 있다.

이 기계들이 내일이면 철거업자의 손에 의해 고철로 뜯겨 나간다. 비록 쇳덩어리에 불과한 기계들이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종두씨 마음이 짠하다. 기계들은 손님이 맡긴 옷을 깨끗하게 빨고 잘 다려내기 위해 유기체처럼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며 그동안 종두씨 사업을 뒷받침 해왔다.

지난 26년간 종두씨 내외는 한 쌍의 목각인형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종두씨가 가게 뒤에서 기계를 돌리며 세탁을 하는 동안 부인 정옥씨는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고 재봉틀에 앉아 옷수선을 하였다. 키 크고 소탈한 종두씨는 가끔 덤벙거려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야무지고 꼼꼼한 정옥씨가 용케도 잡아내어 손님들 옷을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정옥씨는 늘그막한 나이에 세탁소에서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던지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친구들과 골프를 치라면서 종두씨를 일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종두씨는 아내의 배려가 고마워 골프치기 전 날은 더 열심히 일해 자리를 비워도 표가 안나게 해놓고 나갔다.



손님들에게는 늘 온화한 미소로 대했고 손님들도 이런 종두씨 내외를 좋아했다. 긴 세월을 손님들과 거의 매주 한번씩 얼굴을 대하다보니까 자연스레 가까워져서 정도 들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재봉실 벽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색색의 실패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기계도 낡고 종두씨 내외도 늙어 은퇴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기나긴 세월을 변함없이 단골로 찾아준 손님들이 고맙다. 그들 덕분에 아이들 교육을 시켰으며 번듯한 집도 장만했고 그 집에서 노부모와 장인어른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지금은 100세를 바라보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처제와 함께 살고있다.

16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고생한 종업원들도 함께 늙었다. 가게 문을 닫게 되었으니 다른 가게에서 일자리를 찾으라고 몇 주 전부터 노티스를 주었건만 종업원들은 마지막 날까지 가게에 출근하였다. 종두씨가 그동안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며 건네준 보너스 봉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옷이 그득 걸려있던 컨베이어에는 단 두 묶음의 옷가지만이 덩그마니 걸려있다. 미리 폐업 고지문을 붙이고 옷을 찾아가도록 손님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는 옷을 맡기는 손님은 없고 찾아가기만 한 것이다. 사람들은 옷 대신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오거나 '해피 리타이어먼트'라 쓴 파티 풍선을 걸어놓고 갔다.

이제 10분만 있으면 세탁소 문을 영영 닫는다. 손님들은 맡겼던 옷을 거의 다 찾아갔으나 프린스턴으로 이사간 후에도 매주 한 번씩 한 시간을 운전해 와서 옷을 한 보따리씩 맡기고 가던 닥터 마이크가 아직 안왔다. 그를 못 보고 문을 닫게 될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들었는데 문닫기 직전 마이크가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종두씨와 정옥씨는 번갈아 가며 마이크를 포옹하면서 "유아 라이크 마이 손. 위 윌 미스 유"하고 말하였다. 마이크는 "아이 위쉬 유 굿럭"하고 말하면서 흰 봉투 하나를 놓고 마지막 옷을 들고 나갔다. 그가 나간 후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카드와 함께 100불짜리 지폐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2018년 10월 27일 오후 6시, 종두씨 내외가 26년동안 운영하던 뉴저지 우드브릿지의 플라자원 크리너스 문은 이렇게 닫혔다.


채수호 / 자유기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