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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빗속 산행

가야 하나 쉬어야 하나. 집안에서 왔다 갔다 지루한 하루를 보낼 걸 생각하니 손이 저절로 가방으로 향한다.

LA에서도 산(Grizzly Trail)에서도 비는 계속되고 20여 명 회원 모두 우장을 하고 나선 모습들이 빗속의 피난길 행렬이다.

경사는 차츰 급해지는데 빗방울도 점점 굵어지고 바람까지 일어난다. 제인, 스카이, 그리고 나. 세 사람의 숨소린 점점 더 거칠어진다.

광풍은 산야를 휩쓸고 온 산야가 미친 듯이 도리질을 한다. 그런 것들 상관없이 우리 세 사람의 거침 없는 전진은 계속된다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무조건 올라가는 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근데 저 위에서 무엇인가 내려온다. 구름 속에서 광풍 속에서 진눈깨비 속에서 무엇인가 내려온다. 곰은 아닌 거 같은데. 거리는 좁혀지고 이런 악조건에서 반팔, 반바지에 달랑 모자 하나 눌러 쓴 인간이 뛰어서 내려오고 있잖은가. 우린 다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 같이 등산에 미친 인간들 아닌가.

4마일쯤에서 광풍은 더 심한 발광을 하고 진눈깨비가 너무 굵어져 얼굴을 아프게 때린다. 맨얼굴에 진눈깨비 공격을 막을 길이 없다. 더군다나 제인이의 고운 얼굴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후회만 남을 일은 하지 말자. 드디어 하산! 세상 변하는 것 한순간인가. 내려오는 길 군데군데 호수가 생겼고 개울물이 세차게 흐르는가 하면 제법 큰 폭포들이 지친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전방위로 파고든 빗물은 속옷까지 적셨고 신발 속까지 숨어들었다.

돌아오는 길 LA에서 총무님이 사주신 팔팔 끓는 설렁탕이 차가운 빗물에 지친 몸을 깔끔하게 녹여준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이렇게 히죽거리다니.

그래도 난 행복하다. 살아있음에, 이 악천후에 이 나이(81)에 산행할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한다. 그리고 함께 산행할 수 있는 크로버 하이킹 클럽에 감사한다.


정무용 / 크로버하이킹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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