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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음식 문화

밤새 내린 눈이 질그릇 단지 위에 소복하다. 한 뼘 넘는 하얀 벙거지를 쓰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고 있다. 마당에 나가 고무신 발자국 꽃을 찍다가 방으로 쫓겨 들어간다. 그때 부엌에서 흘러나온 냄새가 아직도 아련하다. 콩나물국이나 된장찌개 냄새는 나면서부터 길들여진다. 가족은 먹거리를 챙겨주고 산천은 정기를 뿜어준다. 입맛과 고향산천은 머리에 새겨져 평생을 같이한다.

이태리에서 일이다. 훌륭한 예술품들에 질리고 입맛도 떨어져 그래도 친근감이 있는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국수와 야채와 국물이 있는 메뉴를 찾아 주문한 다음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사람은 우리뿐이다.

한참 만에 꾀죄죄한 여자가 김이 서리는 큰 대접을 내려 놓고 양념 통을 밀어주며 마음대로 넣으란다. 입맛을 다시며 한 젓가락 입에 대다가 말았다. 설 삶은 국수와 숙주나물 몇 가닥에 고기 완자가 소금물에 둥둥 떠있다. 아까워서 국물을 다시 맛보고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필리핀 사람이 이태리에 와서 운영하는 중국집을 찾아간 떠돌이의 어설픔이여.

시간을 다투며 변하는 시대에 음식 문화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모두가 세계화에 맞춰 평준화로 가는 마당이라 한국 음식이 미국에 와서 제 맛을 얼마 동안이나 지킬 수 있을까. 혼이 깃들지 않은 음식은 웃지 않는 미인을 마주친 때처럼 섬뜩하니 뒷맛이 고릴 수밖에 더 있을까. 음식도 문화다. 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듯 역사의 끈이 이어져 혼이 살아있어야 한다. 김치도 설렁탕도 나물비빔밥도 고향 떠나고 손끝이 바뀌어도 혼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비빔밥을 비빌 때마다 희망의 군침이 돌곤 한다.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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