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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가부장제’

개봉 신작 ‘이장’ 정승오 감독

“어떻게 장남도 없는데 무덤 파냐”
아버지 묘 이장에 모인 5남매 소동
얼굴 안 붉히고 가부장제와 작별

‘이장’은 정승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가족에 대한 나의 결핍이 가족영화를 만드는 동기“라 했다. 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이장’은 정승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가족에 대한 나의 결핍이 가족영화를 만드는 동기“라 했다. 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영화 속 가족 3대의 모습. 묘 이장이란 소재는 정 감독의 할머니 묘소가 아파트 부지로 결정 되면서 이장했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묘를 파내는 행위가 21세기에 마주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느낌으로 인상 깊었단다. [사진 인디스토리]

영화 속 가족 3대의 모습. 묘 이장이란 소재는 정 감독의 할머니 묘소가 아파트 부지로 결정 되면서 이장했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묘를 파내는 행위가 21세기에 마주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느낌으로 인상 깊었단다. [사진 인디스토리]

“어떻게 장남도 없이 무덤을 파냐!”아버지 묘 이장을 하러 고향에 간 자매들에게 큰아버지(유순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오 남매 중 유일한 아들인 막내 승락(곽민규)은 이장 일정이 급하단 걸 알면서도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다. “우린 자식 아니냐”며 분개하는 넷째 혜연(윤금선아). 서울에서 배까지 타고 모인 누나들은 결국 왔던 길을 돌려 남동생을 찾아 나선다.

25일 개봉한 영화 ‘이장’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모인 오 남매의 여정을 그린 가족영화다. 신예 정승오(34) 감독이 각본까지 겸한 장편 데뷔작이다. ‘세기말적 가부장제와 작별을 고한다’는 카피답게 가족 내 뿌리박힌 남녀차별 인식을 꼬집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싱글맘인 맏딸 혜영(장리우)의 말썽꾸러기 아들 동민(강민준), 승락의 여자친구 윤화(송희준)가 가세해 예측불허 결말로 내달린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받고, 폴란드 바르샤바영화제에선 한국작품 최초로 신인감독경쟁대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가 주는 넷팩상을 받았다.

지난달 19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정 감독은 “어릴 적 제사 때 큰집에 가면 준비랑 치우는 건 여자들이, 중요한 의식은 남자들이 하는 게 이상했다”면서 “누군가를 추모하는 제사가 성 역할을 구분하고 차별받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그 근원이 뭘까. 뭘 지키려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지키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시나리오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가족영화 동기

영화 속 시끌벅적한 가족과 달리 실제 정 감독은 외아들이다. 열여덟에 부모님이 헤어져 살게 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습작 시절부터 해체 직전·직후의 가족 모습을 계속 담아온” 동기가 “저의 가족에 대한 결핍 같다”고 했다. 그중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오랜만에 모인 네 자매를 그린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으론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우리 집은 헤어지고 행복해졌다”는 정 감독은 “시한폭탄을 안은 듯 아슬아슬했는데 빵 터지지 않고 공중분해 됐다.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과 우리 가족은 무엇이 다른지 보게 됐다”고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을 오 남매로 설정한 건 “자녀가 많을수록 그 가족의 고민이 보편적이고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고민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저희 외가도 열두 남매인데 이모만 일곱이에요. 푸근하고 그 북적북적한 풍경이 흥미로웠죠.”

막내만 아들인 오 남매 구성은 처가에서 빌렸다. 혜영, 금옥(이선희), 금희(공민정), 혜연, 승락이란 이름도 아내와 처형제들에게 허락받고 실명을 따온 것. “집안이 ‘승’자 돌림인데 딸들은 그냥 짓고 처남만 고민해서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죠.”

남혐·여혐 … 가부장제로 인한 차별이 시초

그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이분법적 갈등도 가족 내 가부장제로 인한 차별의 확대·재생산”이라며 “남존여비 사상의 끄트머리에서 차별받은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했을 때 비슷한 차별이 계속되는 게 아니겠냐”고 했다.

“그럼, 여자가 아들 낳는 게 중요하지 안 중요하냐?”(큰아버지) “고추가 무슨 벼슬이에요?”(혜연)

영화에서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혜연은 큰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며느리 생기고 나면 유학파도 유교파가 되는 게 한국 시부모들이야”(혜영) 등 시집살이, 결혼자금, 낙태 등 가족 간의 갈등을 ‘돌직구’로 다룬 대사도 많다. 워킹맘이 육아 휴직을 신청한 뒤 퇴사를 권고받는 등의 현실도 그려진다. 대놓고 아들을 편애하는 큰아버지 캐릭터는 정 감독의 어릴 적 친가 풍경이다.

아버지 보시곤 “네가 나를 죽여버렸구나”

가족들은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다. “큰아버지 빼고 거의 다 보셨어요. 부모님 반응요? 사실, 영화에서 죽은 아버지 이름이 실제 아버지 존함이에요. 아빠 이름 써도 되냐고 동의는 구했는데 영화 보시고 ‘네가 나를 죽여버렸구나’ 하고, 다른 말은 없으셨어요. 어머니는 요새 저희 부부한테 아이 얘기를 약간 하시는데 극 중 인물이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처가에선 셋째(아내)와 넷째(처제)만 봤는데 특히 처남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어요.”

어릴 적엔 딱히 꿈이 없었다는 그가 용인대 영화과에 늦깎이 입학한 건 우연한 계기다. 고교 졸업 직후 군대에 다녀온 그는 작은 회사에 보조로 취직했다. 퇴근하고 동네 친구와 술 한잔이 소소한 낙이었다. 전날도 아무렇지 않게 만났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1년여 칩거하던 나날, 우연히 TV로 본 로빈 윌리엄스의 실화 영화 ‘패치 아담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상실감을 반등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였어요. 영화가 가진 힘, 매력이란 생각에 막연히 한번 해보고 싶어졌죠.”

‘이장’에는 그런 삶의 내공이 잔잔히 배어난다.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웃음이 돼줄 영화다.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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