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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선생의 교실 밖 세상] 멘티 찾아 떠난 하와이 여행

지경희 카운슬러 / LA고등학교

나는 L씨의 멘토다. 그녀가 그냥 사람들 앞에서 멘토라고 소개한 후 그렇게 된 거다. 지난 베테런스 연휴에 그녀를 만나러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힐로로 잠깐 나들이를 했다. 나중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데 와서 한 번 같이 가보자는 말에 멘토라는 묵직한 직함 상 두말 없이 짐을 쌌다. 목요일 밤에 도착하니 온 사방이 깜깜하다. 시골 간이역처럼 작은 힐로 공항에서 반가움에 울음인지 웃음인지 범벅이 된 미소가 귀까지 걸린 그녀는 들꽃으로 손수 만든 레이를 부스럭거리며 비닐 봉지에서 꺼내 내 목에 걸어 주었다.

밤새도록 그녀와 근황 토크를 하면서 같이 울고 웃다가 창밖을 보니 깜깜한 밤하늘에 수놓은 별빛이 쏟아지는데 '휘황찬란'이란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는 밤하늘이다. 수북이 쌓일 것만 같은 무리진 별들의 야무진 모습을 그냥 넋 놓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 키우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녀가 말하듯 아슬아슬했던 아들의 사춘기를 숨이 턱까지 차도록 힘겹게 보냈다. 그리고 아들이 취직을 하기까지 또 맘 졸이며 말도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지난 시간이 '이제 생각하니 별것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앞이 안 보이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아들이 결혼하여 착한 색시까지 얻었으니 감사함 뿐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엄마 걱정도 하면서 용돈도 보내주는 아들을 보면서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것 같았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 미리 닭발을 구해 뼈가 흐물거리도록 푹 고아서 묵을 만들어 놓고 "멘토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먹어보라고 한사발 내놓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다 벌겋게 된 눈을 비비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한 보약을 한점 한점 들었다.



그녀는 늘 누구에게든 내가 자신의 멘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나와 굴곡진 인생을 함께 견뎌냈음을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지 늘 그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인생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계획과 일상을 나누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로 더는 말이 필요 없고 그 어떤 여행 계획도 필요 없이 그냥 함께 있는 그 시간에 만족했다.

그녀의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하는 나는 도착한 다음날부터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함께 청정 대자연의 하와이 섬을 보고 느꼈다. 마침 우기여서 아침부터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을 쓰고 열대 기후의 진한 땅 기운이 스멀대는 대자연의 숲 속에서 땅의 힘찬 기운을 받기도 했다. 길가다 차를 세우고 열대 과일을 파는 곳에서 두리안과 망고스팀을 먹어보기도 했고 과즙과 향이 일품인 하와이안 망고와 파파야 그리고 사이즈가 엄청 큰 아보카도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내겐 멘티가 만들어준 정성 가득한 닭발 묵이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앞이 안보여서 운전을 못 해 길가에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녀와 함께 산을 넘었던 두 시간 동안의 운전이 기억에 새롭다. 그 짜릿했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와 별빛이 흐르던 밤에 두 손 벌려 주워 담은 별들을 서로의 주머니에 가득 채워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위험천만의 빗속을 뚫고 그 험한 산을 넘어가며 가슴 졸였던 순간도 그녀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다시 교육 현장으로 돌아온다. 나에게 오는 수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또 누군가의 멘토와 멘티가 됨을 기대하면서 다시 현장 속으로 복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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