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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목사의 이민과 기독교] 한국식 믿음, 미국식 삶

김대성
김대성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0/10 16:58

저는 장로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녔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주위에 감리교회, 순복음교회 등 친근한 교회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동네마다 장로교회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습니다.

미국에 오니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여기서는 장로교회가 소수 교단이었습니다.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 교회가 훨씬 많더군요. 전통적으로는 미국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지만, 실제로 장로교회에 다니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장로교회라는 말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한인교회들 가운데는 여전히 장로교회나 아니면 장로교회의 원리를 따르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모였을 때는 익숙한 문화가 드러나게 되어 있고, 교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역시 이민자들은 두 나라를 동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독일계 이민자들도 우리보다 앞서 같은 경험을 했었습니다. 180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이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본국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흉년과 지역적인 가뭄은 많은 농부들이 고국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했습니다.

현재의 중서부 지역이 당시 독일계 이민들에게 인기 있는 정착지였다고 합니다. 1800년대에는 이 지역이 서부의 개척지였습니다. 가난하고, 절약해 살아야 하고, 부지런히 일해서 정착해야 하는 독일계 이민들에게 서부 개척지 외에 더 좋은 선택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밀워키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독일어와 독일문화가 자연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1850년도에 방문자들은 밀워키에서 독일식 여관, 맥주 창고, 당구와 볼링 시설, 그리고 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일식 맥주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지방별로 다른 교회들이 있었고, 이민자들의 절반 정도가 루터교인들이었습니다. 독일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교회를 함께 들여왔습니다. 독일 삭소니 지방의 한 교회에서는 교인 600명이 현재 세인트루이스 100마일 서쪽으로 함께 이주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개척지 이민자들의 첫 교회는 소박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의 집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자들이 늘어가면서 교회 건물을 세우고, 그 다음에는 독일에서처럼 높은 종탑이 있는 교회당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독일어로 예배하고 기독하고 찬송하는 교회가 자연스럽게 늘어갔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 국밥을 먹는 것처럼, 독일 교회는 소시지에 맥주를 마셨을 법 하네요.

독일계 이민자들이 꿈꾸던 교회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신학서적이 채워진 도서관이 있고, 파이프 오르간으로 교회 음악을 연주하고, 독일 찬송과 악기, 그리고 목사님들의 복식도 중요했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교회가 학교를 세우고, 또 높은 탑에서 하루 두 번씩 울리는 종소리 까지, 자연히 독일의 루터교회를 이 곳에서 세우고 발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중서부 곳곳에 학교 이름이나 도시 이름에서 두 세기 전 쯤에 정착한 독일계의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꿈꾸던 교회를 세우고 다니면서 지키고 싶었던 믿음과 소망을 기억하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우리기 꿈꾸는 이민교회를 이루어가며 그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겠네요. 한국식 믿음과 미국식 삶이 매일 만나면서요. [교회사 박사, McCormick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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