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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이상과 현실 사이

신호철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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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3 17:01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 되었다. 눈각막에 조그만 홀이 생겨 물체가 조금 찌그러져 보였다. 전신마취를 하고 누웠는데 깨어날 때까지 몇시간이 흘렀는지? 도대체 어떤 수술과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러나 정신은 그대로였다. 단지 눈 주위를 붕대로 감은 얼굴을 만져보는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3~4개월 눈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되뇌이며 병원의 긴 복도를 아들의 손과 어깨에 의지하여 걸어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체험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데아와 현실의 당혹감을 견디어야 했던 어려움의 과정이 있었다.

인생의 풍찬노숙을 다 겪은 61세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17세의 시골소년 아리스토텔레스가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 소년은 20년동안 스승이 타계할 때까지 그의 열정적인 제자로 살아가게 된다. 한 스승 밑에서 다른 철학을 갖고 오랜 시간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톤은 시공간을 초월한 이데아를 사물의 진정한 존재라고 말하며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물이란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흉내낸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한 개체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지며 그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한가지 예로 꽃을 바라보는 견해도 차이가 있다. 플라톤은 꽃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아가 꽃에 들어감으로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꽃의 아름다움은 꽃으로 분리 될 수 없는 꽃의 한 속성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작은 원들을 포함하고 있는 큰 원에 의미를 두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큰 원안에 들어있는 각각의 작은 개체에 의미를 두었다.

사실 나는 철학에 관심이 없다. 개체가 중요하든 전체가 중요하든,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꽃에 들어가 아름다운 꽃이 되었든, 꽃을 바라보는 순간 꽃 자체의 속성이 아름다워 아름다운 꽃이 되었든 나는 꽃은 아름답다라는 감탄 그 외의 어떤 의미도 두고 싶지 않다. 이상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그 물음도 큰 의미가 없다. 누구나 생각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 현실이라는 무거움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눈이 보이지 않던 3개월동안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사상을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고, 때로는 이데아에 때로는 현실에 마음이 쏠려 두 세계를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시간 이후 나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는 물론이거니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감사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놓칠 수 없는 순간 순간들의 소중함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저 지나쳐 버릴 수 없는 풍경과, 어떤 일들의 과정들이 누군가가 힘겹게 살아가는 삶 같아서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창밖에 한차례 비가 뿌린다(시카고 문인회장)

빛방울이 떨어지는 길을 뛰어
막 호숫가에 도착 했습니다
보석 같은 빗방울에 숨을 고르며
반짝이는 호수는 스스로 빛이 됩니다
우리의 거리만큼 물결이 일고
우리의 생각만큼 비가 내립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로 팽팽히 철로가 놓이고
긴 기적을 울며 한 사람이 뛰어갑니다
그 사람 뒤로 빗방울이 세차게 뿌립니다
그는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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