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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점심시간 없애고 한 시간 빨리 퇴근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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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3 18:02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8)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누군가는 하루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맛있는 걸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나. 식사하면서 동료와 함께 나누는 대화도 중요하다. 서로가 아군인지 적인지 탐색전을 펼쳐야 하고, 답답한 사내 규정과 제도에 대한 한탄도 적당히 풀어놔야 한다. 매일 해도 닳지 않는 연예계 이슈, 정치, 스포츠 등 각종 뉴스를 한 바퀴 쭉 훑고 나서, 상사 흉으로 마무리를 장식하면 별 반찬 없이도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팀장님이 내 칼럼을 안 보시니 다행이다).

우리가 늘 시답잖은 잡담만 나누는 건 아니다. 한 번은 점심시간을 없애고 일하는 게 어떨지 논의한 적도 있었다.
“심 샘, 점심시간 없애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하루 중에서 점심시간이 가장 좋다는 그 동료가 내게 물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맛있게 밥 먹다가…”
“점심 1시간을 없애고 하루에 8시간(9시~17시)만 일하자는 거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가 당황하자, 갓 입사한 막내가 해맑게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면, 우리 5시에 칼퇴하는 건가요?!”

정해진 식사 시간 없이 배가 고플 때마다 휴게실이나 각자 책상에서 간편하게 점심을 해결하자(desktop dining)는 취지였다. 도시락도 좋고,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은 반찬이 없으니까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서 먹을 수도 있다. 마치 미국의 오피스 라이프처럼 핫도그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일하자는 것이다.

퇴근 시간만 보장된다면 나쁘지 않은 제도라고 대부분 동의했다. 중간에 점심으로 맥을 끊지 않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으니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바쁜 도시인에게 삼시 세끼 식사 패턴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하면서도 먹고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먹는 경우가 생긴다. 서구에서는 그 모습이 마치 초식 동물이 풀을 뜯으며 돌아다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레이징(grazing) 식사라고 한다. 공원의 벤치나 계단에 걸터앉아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걷는 동안 식사하면서 시간을 아낀다. 우리 조상님들이 살아생전에 이 모습을 보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바쁜 직장인들은 정해진 식사 시간 없이 책상에서 일하면서 간편하게 점심을 먹기도 한다(desktop dining). [사진 pixabay]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있는 삶’과 ‘따뜻한 식사’가 보장된다면, 나 역시 점심은 간단히 먹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 전제 조건은 적어도 하루 한 끼는 따뜻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따뜻한 식사란 자연이 만들어주는 식재료에, 먹으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하고, 힐링이 되면서 보약과도 같은 건강한 먹거리를 말한다.* (강하라 외, 『따뜻한 식사』, 껴안음, 2020 참조)

건강한 먹거리란 껍질에 파라핀 왁스를 입혀서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한 과일 따위나, 성장 촉진제를 쓴 채소, 유전자를 조작한 콩, 항생제를 쓰거나 미네랄 오일을 발라서 윤기를 낸 달걀, 발정제를 먹인 돼지고기 등과 반대된다. 껍질째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과일, 봄철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자란 나물, 제철에 맞거나 토종 씨앗을 유기농이나 자연재배 방식으로 키운 농산물을 말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과 더불어 자연의 다양한 재료들이 주는 고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식사다. 이렇게 따뜻한 정성으로 채운 식탁, 식사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나누는 대화와 여유, 그래서 결국 마음과 건강이 따뜻해지는 식사 말이다.

이처럼 ‘따뜻한’이란 형용사가 음식을 수식하면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반면에 ‘차가운’이 붙으면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느껴지는데, 왠지 식은 밥을 먹으면 서럽다거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우리는 찬밥 신세라며 한탄하지 않는가. 우리 문화 속에는 음식의 온도 차이와 대접의 정도에 상관관계가 담겨있는 것 같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음식을 날 것에서 불에 익히는 것을 요리로 보았다. 날것은 야만, 원시, 자연과 연관되는 반면, 익혀서 요리된 것은 문화, 문명, 사회적 교류를 의미한다. 즉, 화식(火食)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구분 지을 수 있는 근거였다. 음식을 불로 익히자 부드러워지고, 맛도 생기고, 각종 세균과 식중독으로부터 안전해졌다. 안전하게 식량이 공급되면 건강해지므로 인구가 늘었을 것이고, 불가에서 단란하게 모여서 식사하면서 모임과 회동도 이뤄졌을 것이다. 섭취하는 에너지가 증가하고, 부드러워진 음식 탓에 소화 시간도 단축되니 문화를 창조할 힘이 비축됐을 것이다(침팬지는 날것을 씹어먹는 데 5시간을 소모한다고 함).

하지만 고도로 문명화된 현재에도 우리는 여전히 날것을 환영한다. 우리는 생선회나 육회를 사랑하고, 가까운 나라 일본의 자랑거리인 스시는 세계인의 입맛을 매료시켰다. 날것이지만 최고급 요리가 즐비하다. 사실 고도화된 문명의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날음식을 즐길 수 있다.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통 과정부터 냉장 체인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왕이나 최고 권력가 정도가 된다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불만큼 얼음도 식품의 위생과 안전한 저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한, 계급과 관계없이 음식과 요리의 가능성을 더 넓게 확대해 주었으니, 문명화의 정도를 파악하는 데 얼음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냉장기술 시스템이 갖춰진 현대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으려는 맛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맛인 날것이라니, ‘야생적 혀’가 유전적으로 내려오기 때문일까.




고도로 문명화된 현재에도 우리는 여전히 날것을 환영한다. 우리는 생선회나 육회를 사랑하고, 일본의 스시는 세계인의 입맛을 매료시켰다. 날것이지만 최고급 요리가 즐비하다. [사진 pixabay]






냉장기술의 발전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신선한 음식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그것도 멀고 더 넓은 시장에서 각종 식품이 들어온다. 얼음의 반격이 시작됐다. 바닷가재가 처음 열차를 탄 것은 1842년으로,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시카고까지 급행열차로 이동했다. 호주에서는 1868년 소고기가 영국으로 처음 출항했고, 4000여 마리의 양고기는 1882년 최초의 냉장선을 타고 뉴질랜드에서 런던으로 항해했다.

192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영하 40℃의 급속 냉동기술이 개발되면서, 식재료의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여 해동 뒤에도 맛과 모양의 변화를 줄일 수 있었다. 이후 냉동식품은 물론 군용 전투식량에서 파생된 레토르트 식품이 탄생했고, 근래에는 유명 쉐프의 요리를 그대로 만들 수 있도록 손질된 재료와 양념, 레시피가 세트로 구성된 밀키트(Meal Kit) 배송 서비스까지 나왔다.

밀키트의 대표적인 브랜드는 미국의 블루 에이프런(Blue Apron)과 독일의 헬로 프레쉬(Hello Fresh)가 있다. 단순 장보기 대행 서비스가 아니라 요리 초보자들에게 간단한 방식으로 맛좋은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웰빙과 편리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야심 찬 시도이다. 한동안 차가운 음식은 미움을 받아왔다. 해동되면 맛이 변하고 품질도 낮다고 해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보라, 차가운 음식의 업적은 실로 위대했다.

주문 음식으로 따뜻한 한 끼를 때울 수 있고, 냉동식품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따뜻한 음식이 된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밀키트라는 선택지도 있다. 인류는 이제 만족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음식의 온도만을 생각했을 때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요리란 본래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는 점과 음식은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돈으로 소비하면 가치를 잃는다는 것이다. 따뜻한 식사는 상품으로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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