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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빠 생각

“내게 아버지 같았던 오빠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셔서
하늘에서 만날 소망으로
나를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

오빠께서 페덱스 속달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주신 것이 고마워 오빠와 국제 통화를 했다. 팬데믹 때문에 국제 편지는 한 달이 걸린다고 해서 속달로 보내셨다고 하셨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책을 발간한다고 했더니 축사를 써 주셔서 매우 고맙게 생각했는데 그것이 마치 오빠의 유언장처럼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오빠는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내 나이 13세 때 아버지께서 한국전쟁 때 돌아가셨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라 슬픔에 겨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빠께서 늘 버팀목처럼 옆에 계셔서 위로해 주시고 훈육도 해 주시고 문학의 꿈을 키워 주셨다.



오빠께서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하셔서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다. 오빠를 스승처럼 따르며 제자의 길을 가듯이 묵묵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오빠의 가르침이 나의 인격을 다듬어 갔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셨지만 오빠가 계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는지 모른다.

고려대학교에 석좌교수로 평생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돌아가실 무렵엔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으로 일하셨다. 올해 연임이 되셨다고 매우 기뻐하시면서 국제통화를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하늘에서 만날 소망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곳 미국에서도 오빠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김 교수님은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하다라고 해 오빠의 강의를 한번 듣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동생 김영교 시인과 친구 박영숙 권사님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오빠께 간청했다. 오빠의 강의를 한 번 직접 듣게 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셔서 셋이서 강의실에 들어가 난생 처음 오빠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 오빠는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으로 계셨다.

어언 반세기가 훨씬 지난 다음 고려대학교를 가보니 대학 건물들이 몰라보리 만큼 많이 지어져 있었고 특히 국제대학원 건물은 초현대식 건물로 호텔처럼 잘 지어져 나의 눈길을 끌었다. 국제대학원 건물은 외국 학생들과 외국인 교수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수강생 대부분은 큰 기업의 CEO와 경영진들이었다.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 영시를 한편 낭독하시고 번역하신 후 강의 서론으로 들어가셨다. 딱딱한 경영학 강의시간에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함으로 부드러운 분위가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의 시였다. 그 시 가운데 나는 끝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어제는 과거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고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a gift)”

강의 내용은 최고 경영자를 위한 주제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경영학 전략이었다.

경영학에 문외한인 우리가 들어도 충분히 이해되고 강의 내용이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명강의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오라버니와 동생과 나 친구 넷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들은 뒷좌석에 앉아서 이구동성으로 너무나 훌륭한 강의였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때 강의하시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르면서 더 이상 뵈올 수 없으니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오빠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원 잡지사에서 개최한 전국 시 경연대회에 출품해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시 ‘기(旗)’를 이곳에 옮겨 본다.

“너를 볼 때마다/ 파란 연기처럼/ 오르고 싶은 마음// 나는 너의 호흡이/ 너의 세계가 못 견디게/ 그리워서 그만 네가 되어본다// 너는 나를 키워준/ 또 하나의 어머니// 비록 기는 바람에 찢기고/ 눈보라에 헐리었어도/ 여기 내가 기를 올리면/ 기는 또 나를 올린다.”(김동기)


김수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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