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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혼밥이 어때서

“밥 잘 먹고 집 잘 보고 있냐? 그런데 그 혼밥이 우리 나이에는 안 좋은데.” 집사람을 유럽 성지순례 보내고 홀로 있는 나에게 한국의 친구가 보낸 문자 메시지다. 나이 들수록 부부는 뭐든지 함께 하라고 하지만, 여행은 괜찮아도 성지 순례 가는 데는 나는 늘 ‘자발적 열외자’다.

혼밥이 처음에는 잡곡밥인가 했는데 문맥으로 따져 혼자 먹는 밥으로 짐작했다. 신조어와 줄임말이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노년에 혼자 해 먹기가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안사람이나 아랫사람이 차려주는 것이 우리 전통 식사 문화 아니던가. 내가 어려서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늘 따로 독상을 받으셨다. 그래서인지 혼자 먹거나 혼자 마시거나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은근히 부럽기조차 했고 내가 어른이 되어 독상을 받는 상상을 하기도 했으니까.

좀 찾아보니 혼자 먹는 밥 말고도 혼자서 술을 마시는 ‘혼술’, 혼자서 여행을 가는 ‘혼행’, 혼자서 영화를 보는 ‘혼영’이 있으며,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혼족’이란 단어도 있다. 혼밥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는 ‘떼밥’이라고 한다는 말도 처음이다. 떼 지어서 같이 먹는 밥을 줄인 것인데 그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가족이 둘러앉아서 하는 식사를 떼밥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먹으려고 아귀다툼하는 연상을 준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먹는 ‘둘밥’이라는 말도 쓴다. ‘신조어의 행진’은 끝이 없다.

미국에서 살면서 애들 다 자라 제 갈 길 간 후에 두 내외만 살면서 둘 중 하나가 일이 생기거나 집을 비우게 되면 혼자 먹게 된다. 특히 내 집사람처럼 교회 일에 열성적이지 못한 나는 혼자 밥 먹는 일이 꽤 잦은 편이다. 집사람이 아는 어느 지인은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떠나기 전에 미리 그동안의 남편 식사를 끼니 맞춰 냉장고에 챙겨놓고 간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더니 그 친구 호강하네.” 그 얘기 듣고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나야 스스로 알아서 자체해결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혼밥이 크게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나 홀로 문화’가 도래했다는 신호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밥을 혼자서 먹는 것은 궁상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보아 왔지만, 이제는 혼밥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한 옆 나라 일본에서는 혼밥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실제로 많은 소규모 일본 식당은 식당 내부가 혼밥족을 고려해서 꾸며져 있다. 주방을 마주 보는 일직선으로 된 긴 테이블이나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따로 있는 1인 식당도 흔하다.

식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교류, 인간끼리 소통의 장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혼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혼밥은 소통이 빠진 ‘자폐 행위’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킨 ‘맛 칼럼니스트’가 있는가 하면 전 대통령 박근혜의 혼밥이 그녀의 ‘불통’과 직무상 태업의 원인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식사 문화는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식사 중에는 되도록 말을 않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고 식사 자리에서 떠드는 것은 무례한 짓으로 여기는 문화다.

그런데 최근 20대 신세대 간에 유행하는 혼밥 열풍에 주목하여 이를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구세대들처럼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해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혼밥이다. 요새 한국에도 1인 고객을 위한 식당이 늘고 있는 것은 밥 먹으며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을 놓지 않으려는 디지털 신세대의 혼밥 취향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제는 우리 식사 문화에도 사이버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의 장이 도래한 느낌이다. 그 소통의 상대는 헤아리기 어렵고 그 폭은 사이버 공간만큼 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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