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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허슬러(hustler)



한 30년쯤 된 일이다. 그때 내가 살던 아칸소주 작은 도시에 있는 시립 골프장에서 골프를 자주 쳤다. 나와 같은 그룹을 지어 골프를 치던 골퍼에 씨씨(CC)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본명은 ‘Charles Cabot Ritchie’인데 처음 두 이름의 앞 자 C만 따서 다들 CC라고 불렀다. 씨씨는 골프를 나이 50 넘어 시작했고 제대로 된 레슨도 받지 않아 순전히 자기 스타일의 스윙을 하고 있었다. 키도 작고 아랫배도 나와 백스윙이 짧고 자연히 비거리도 짧았다. 그러나 그는 쇼트 게임의 달인이었다. 그린 근처에서의 치핑과 그린 위에서 퍼팅은 가히 프로 수준이었고 그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모두가 그린에 올라 퍼터를 들고 차례를 기다릴 때면 그는 큰 목소리로 “Putting contest(퍼팅 시합이다)!”하고 외치곤 했다. 제일 먼저 퍼팅에 나서 자세를 잡는 사람을 향해서는 으레 “Knock it in and be a hero(공 넣으면 넌 영웅이다)!”라기 일쑤고 어쩌다 자기의 긴 퍼팅이 홀에 들어가게 되면 “Drive for show and putt for dough(드라이버 샷은 과시용이고 퍼팅 잘 해야 돈 딴다)”라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의 드라이버 티샷이 짧은 것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골프장에서 자주 듣는 격언 같은 말이다.
우리는 25전짜리 내기 골프를 더러 했는데 대개 푼돈이 걸린 일이니 다들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이기고 지고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씨씨는 안 그랬다. 돈 내기라 하면 보통 때 같지 않게 긴장하는 빛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고 다른 사람들의 스코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시합 도중에 늘 “What do you lie(너 지금 몇 타 째냐)?”라고 묻고 오비(OB)가 나거나 자기가 친 공을 잃어버리게 되면 “I’ll be damned(제기랄)!”라고 중얼거리며 좀처럼 공 찾는 일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의 지나친 승리욕 때문에 그는 허슬러(hustler)로 통했다. 폴 뉴먼이 내기 당구의 달인으로 주연해 유명해진 영화 ‘허슬러(The Hustler)’가 생각나게 했다.
허슬은 흔히 쓰는 표현이다. 영화 ‘허슬러’ 말고도 몇 년 전 종영한 소위 ‘통 큰 대인배’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국 BBC의 드라마 시리즈 ‘허슬’이 있다. 미국의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와 경쟁하는 ‘허슬러’가 있고 ‘허슬러’라는 일본 스즈키 자동차 모델도 있다. 허슬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악착스럽게 게임이나 도박에서 이기려고 하거나 비즈니스에 성공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허슬러가 목표 달성을 위해 때로는 법에 어긋나는 일도 하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일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허슬러는 부정적으로 보는 게 보통이다. 거리에서 마약 밀매를 하거나 매춘 알선을 하는 포주는 허슬러의 극단적인 예다.
문화사 전문가이고 사회 비평가인 모리스 버만(Morris Berman)은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400여 년에 걸친 ‘허슬 문화(culture of hustling)’라고 한다. ‘허슬 문화’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것을 미국이 저지른 나쁜 죄라고까지 꼬집어 말한 버만은 미국에서 만사는 자본주의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의 삶은 소비문화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허슬은 때로는 활력과 축재의 원천이지만 궁극적으로 공허하고 암울하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풍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때로는 체면도 양심도 나 몰라라 하는 마음가짐, 이 모두가 한국적 허슬 문화의 단면이 아닌가 한다. 일류 학교, 일류 직장, 아파트 청약을 위해 경쟁하는 일도 허슬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고향을 등지고 미국에 이민 와서 애쓰고 고생하는 것 자체가 허슬이라고 해도 되겠지. 정말 꼴불견은 자식들의 미국 시민권을 위해 미국으로 원정 출산을 하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고 싶어서 자녀들을 조기 유학시키며 기러기 가족생활을 하는 허슬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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