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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민 칼럼] 콜럼버스 데이

1500년 경 서구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최고조에 달하던 때다. 이미 1400년을 전후하여 르네상스에 의한 인문주의의 대두로 각종 과학이 발달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 중 특별히 선박제조 기술과, 항해술, 그리고 대포같은 무기가 발달하였다. 이것은 삶의 안전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는 했으나, 한편 강대국들이 약소국가를 침략하여 식민지화하는 정책에 적극 이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1492년 이탈리아인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의 허락을 받아 대서양 항해에 나선다. 그는 지금의 미 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날이 바로 1492년 10월 11일로서 오늘의 콜럼버스 데이인 것이다.
수 십년 뒤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몇 차례의 항해탐험선들이 오가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살인자, 강도, 해적, 약탈자같은 범죄자들이 도피처로 아메리카대륙에 들어와 거주하기도 했고, 상인들도 들어와 황금이나 향료를 구해 가기도 했으며, 때로 별 신통한 소득이 없을 때는 원주민들을 끌고가 노예로 삼는 일들이 있기 까지도 했다.
1600년 이후 부터는 유럽으로부터 이주하여 살겠다는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이주민들이 대륙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메리카대륙의 초기 이민자들이 이민 조상으로 불리울 만한 자랑스러운 존재들이 되지 못하여 1620년 메이플라우어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을 이민의 조상으로 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할 수 있다.
어쨌든 초기 이민자들과 청교도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미 합중국을 세우게 된다. 금면, 검소, 협동같은 사회도덕존중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 남북전쟁과 같은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겪으면서 부국의 토대를 쌓았다. 건국시기에는 노예제를 바탕으로 농업을, 노예해방 이후는 공업을 발전시켜 오늘에는 세계 최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 미국의 역사다.
안톤 드보르작은 1893년, 3년의 미국방문 중 이 나라에서 받은 인상을 자신의 고향인 보혜미아를 연상하며 불후의 명작인 ‘신세계교향곡(From the New World)’ 을 작곡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렇게 시민들의 희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신으로 세워졌는데, 우리는 이민와서 이 국가를 위해 한일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은 하면서 살아야 될 것이다. 수백년을 거치며 쌓은 인류를 위한 정신적 가치들을 지키겠다는 그런 기본을 가지고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한인들은 이민와 많은 돈을 벌어서 혼자만 잘사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본토인들로 부터 미움을 받으며 살기도 했다.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기반, 넉넉한 공공시설, 주거 및 일자리환경 모든 것이 이 땅의 선조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터전에 타국인들이 이민와서 그 삶의 환경적 요소의 덕을 보고 자기들만 잘 사니 본토인들로 부터 눈총과 질시를 받게 된 것이다. 한 예로, 1992년 4월에 발발된 LA 폭동도 아무관련이 없는 한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회에 기부나 유익한 도움을 주지 않고 가난하게 사는 흑인들의 돈만 벌어가는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다양한 국가들의 인종들이 이민을 와 경쟁적으로 살다보니, ‘개척’이나 ‘기회의 땅’ 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희망적인 속설들이 사라진 형국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나 문화적인 면에서 창조적 삶을 살아야 하며,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국가정신, 즉 자유와 민주, 정의, 인류애에 대한 봉사와 헌신에 충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 국가건립에 핵심 사상이었던 신앙을 바로 세워 지키는 것이다. 다시말해 청교도신앙을 지키는 것인데, 인종이 다르고, 언어나 문화가 다른 환경속에서도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신앙정신이 불모지를 황금의 옥토로 바꾸어 세계최강의 국가를 만들었던 근본적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초기 이민역사 해석에 의미를 주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콜럼버스의 미 대륙발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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