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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어렵지 않은 사람 없어요”

[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생활 40여년 이옥희 권사

인천에 살던 이옥희(사진) 권사가 미국 이민을 결정한 것은 1975년이었다. 당시 한국은 치맛바람과 자녀 유학이 조금씩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약국 운영을 하면서 세무공무원들의 나쁜 행태를 직접 겪던 그는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셈치고 이민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몇 년 전 발생한 김신조 무리의 청와대 습격 사건은 6.25전쟁 당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던 그의 결심을 도왔다.

전쟁 당시 중학교 5학년(고교 2년)으로 부모님과 헤어져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오빠 동생들과 지낸 그는 오빠의 인민군 징집과 탈출, 무자비한 인민재판 등을 직접 목도했다.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속 1년만인 이듬해 남편의 지인이 있던 시카고에 도착했다. 고교 3학년부터 7살짜리 막내까지 5명의 딸들 과 함께였다.

처음엔 바늘과 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다른 한인 직원들의 텃세 때문에 오래하지 못하고 2년 만에 나와 세탁소를 차렸다. 하지만 고객과의 변상 소송을 거치면서 문을 닫고 그로서리를 인수, 운영했다. 그로서리는 식품 유통 기한 관리가 쉽지 않았고 결국 다운타운 세탁업소를 다시 인수, 은퇴하기 전까지 20여년 간 운영했다.

1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는 서버브 윌링에서 혼자 산다. 다섯 딸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델라웨어, 뉴저지, LA 등 타 주에 살고 있다. 라인 댄스와 종이접기를 즐기고 친구들과 함께 부지런히 걷는다. 가끔 힘들 때면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 “자식들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합니다. 아프지 않고 당당하게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살고 있죠.”



1933년생인 그는 안경이나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 비결은 현미양조식초 복용이다. “60대 중반, 안현필 씨의 건강 서적을 읽고 산성화 된 몸을 중성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약사 출신답게 꿀을 첨가한 자신만의 식초물을 만들어 복용하면서 훨씬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전학을 너무 많이 다닌 게 징글징글 해 이사하는 게 싫다. 겨울이 조금 춥고 봄이 짧지만 시카고는 사계절이 있어 좋다. 떠나지 않을 생각”이라는 그는 “언젠가 딸들에게 미국에 온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모두 ‘잘 왔다’고 대답했다. 건강하게 잘 성장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면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민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시련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 시련을 통해 더 성장한다는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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