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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기독교 신앙과 만우절

최선주
최선주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3/22 18:45

거의 모든 종교는 경건함과 엄숙함을 강조한다. 종교적인 의례나 행사는 행복하고 명랑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사제나 승려 혹은 목사의 복장은 한결같이 흑백 혹은 회색의 단조롭고 무거운 색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는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 신앙은 활기차고 기쁘고 행복한 핑크빛 사랑과 붉은 빛 심장의 빛깔이어야 더 어울릴 것이다.

미국인들의 장례식장에 가면 우리처럼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을 당한 가족들도 울고 침울해하기보다는 고인과의 기억 가운데서도 재미있고 웃게 했던 내용을 나누며 함께 웃는다.

어떤 이는 성경에 예수가 울었다는 내용은 나오는데 웃었다는 말은 없지 않은가 반문할지 모른다. 잘 안 우는 사람이 우는 경우를 보면 특기할 내용일 것이다. 그 당시에도 남자 그것도 기적을 행하던 초능력의 위대한 이가 우는 것을 보는 것은 예삿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웃음에 관련해서는 남녀를 불문코 그 사람이 웃었더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웃음은 울음보다는 자연스런 일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고 먹고 마시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분이었다. 제자들을 보고 우뢰의 아들이라거나 반석이라고 부르자고 하면서 즉흥적으로 별명을 붙여주기를 즐겼다. 그런가 하면 맘에 안 드는 위정자를 향해서는 교활한 여우, 위선적인 종교인에게는 독사의 자식이라거나 회칠한 무덤 등으로 가차없이 면박을 주기도 했다.

남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이는 기지가 있고 센스가 넘치는 게 보통이다. 예수가 허풍에 가까운 과장법을 써서 멍청한 이들의 이해를 돕고, 그림책을 보여주듯 생생한 비유를 들어 가르치기도 한 것을 보면 엄숙하고 침울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는 확신이 든다. 오히려 센스 있고 유머가 넘치며 명쾌한 성격을 엿보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다정하고 친절하며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 예수는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제자들이 이를 귀찮게 여겨 쫓아내고자 할 때 예수는 그들을 책망하며 어린아이들을 귀여워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순수하고 발랄하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침울한 모습으로 있지 말고, 두려워하거나 마음에 근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한편 감사하며 즐거워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공중의 새나 들꽃들을 비유로 들어가며 제자들에게 자족하는 삶을 권면하는 엉뚱하리만치 참신한 화법을 구사했던 분이다.

눈에 들보가 박힌 채 남의 눈 속의 티를 보고 조소하느냐는 내용이나 낙타를 삼킨다는 식의 예수의 말에 따른 장면을 상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예수와 거하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면 멀쩡한 남자들이 잘 데도 없고 나올 것도 없는데 만사를 제치고 몇 년씩 예수를 따라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헤롯 왕에 의해 예수는 바보로 취급되어 조롱을 당했다. 정신병자로 상징되는 옷을 입히고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진 채 유대인의 왕이라고 팻말을 붙인 십자가를 끌고 거리를 행진하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금요일의 십자가 형 직전에 예수의 그런 모습을 재현하며 만우절의 시초라고 할 만한 기념행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만우절은 원래 “바보들의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켈트족과 로마의 풍습, 기독교의 색채가 혼합되어 중세 유럽에서 성행했던 기념일이다.

성경의 잠언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셰익스피어의 책에는 웃음이 명약이라는 공통된 내용이 나온다. 신부나 수도승, 평신도 들이 함께 얼굴에 색칠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상사나 윗사람을 풍자와 해학적인 노래로 표현하며 소란스런 행진을 하고 그날은 아멘 대신에 히호라는 환호로 화답했다고 전해진다. 신부를 납치해서 바보 같은 교황행세를 하게 하기도 하고 평신도들이 수도승의 옷을 입고 웃기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에 이르러 교회의 권위자들에 의해 벌금과 함께 책망을 받게 되고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교회법으로 아예 금지시켰다.

이제 다시 예수님의 유머를 회복시키는 측면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의 분위기는 침울 엄숙이 아니라 명랑, 행복의 내용이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결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알기에 어떤 경우에도 웃어 넘기며 넉넉하고 평온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는 게 기독교신앙의 본질이다.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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