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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목사의 이민과 기독교]광복절과 한인교회

김대성
김대성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8/15 15:21

기독교인들은 기도의 의미와 능력을 믿습니다. 이민자들은 고국을 가슴에 품고 살고, 굴곡의 역사를 가진 한인들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광복절을 지나며 한인교회에서는 예배마다 고국을 위한 기도가 더할 것입니다.

미국 한인이민자들 역사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애국심은 신앙과 뗄 수 없는 의미였고, 교회는 실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었던 일제 강점기에서 2세, 3세와 함께 일하는 지금까지 많은 한인들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매 주일 예배를 보고 이야기하면서 고국을 기억하고, 수요일 밤에, 매일 새벽에 고국의 위기 때마다 기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1906년 박용만을 비롯한 한인들은 소년병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네브라스카의 미국인 농장을 빌려 매년 여름 3개월씩 3년 과정의 군사학교였습니다. 학생들은 낮이면 농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교련훈련을 받았습니다. 교육과정은 국어, 영어, 한문, 일어, 수학, 역사, 지리, 이과 등에 군사훈련과 육군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거기에 신, 구약 성서 연구도 더해졌습니다. 당시 박용만을 비롯한 한인들과 학생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약 10년 정도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1925년에는 고국에 기근이 심해 기아에 허덕인다는 소식을 듣고, 새크라멘토 한인예배당 주일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용돈을 절약하여 13원을 보냈다고 합니다. 1930년에는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서는 성탄헌금을 모아 국내 동포들에게 보냈고, 로스앤젤레스 한인장로교회에서는 대구에 있는 병원을 위해 헌금을 보내었습니다.

태평양전쟁 중이었던 1942년에는 한인교회들이 전승을 기원하면서 성탄헌금을 적십자에 보내었습니다. 상해 당한 이들의 구제와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1944년에는 시카고의 교회와 부인회가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참전한 한국 청년들을 위로했고, 이를 위해 미국 교인들이 한글 성경을 보내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45년 봄에는 전쟁이 끝날 것을 준비하여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부녀봉사회가 전후 한국의 빈민을 위해 교인들이 매월, 매주일 구제금을 거두어 저축했습니다. 또 만두를 손수 빚어 동포들과 외국인에게 대접하고 1원씩을 받아 구제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네요. 우리도 교육도 하고, 모금도 하고, 응원도 하고 …모두가 독립군이 되거나 임시정부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미주 한인들은 민족정신을 지키고,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 중심이 되기도 하고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 교회였을까요? 기독교를 민족운동의 기초로 삼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서구 제국과 교류하는 통로가 되고 교회와 주일학교 조직이 민족운동의 실제적이고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조국을 위한다면 기독교인들도 당연히 그러할 테니까요.

그러나 더 깊은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민족운동이 기독교적 실천이고 선교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구원과 사랑을 전하는 종교입니다.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고 전인적인 구원과 정의의 수립은 기독교인의 목표이자 의무입니다. 교회에 모인 한인들에게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수고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기도는 신비롭습니다. 한 대상을 위해 기도하고 나면 더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기도한대로 실천하려고 움직이게 하는 힘을 줍니다. 한인 기독교인들은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었고, 그래서 교회는 힘을 모으는 곳이었습니다. [교회사 박사, McCormick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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