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억새

1
어깨 위에 앉아 졸고 있었지
떠도는 생각을 지우려고
두려운 내 목을 겨누며
무늬 없는 색갈이 좋았었지
나도 나로 살기 위해
한마디 말이 필요 없는
가장 무서운 내 혀를 말아


모가 난 교만을 뱉어내고 있었지
힘을 빼고 옆가지를 꺾어도
어제라는 시간의 굴레에 매여
금밖으로 거칠게 밀어내는 손

2
어디에서 굽어졌는지
기억해야 했지
지나가며 속삭인 바람이며
숨겨도 드러나는 찌꺼기 감정
지친 어깨 내려놓으려
내게로 돌아오려는 네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는
푸른 언덕이 먹먹히 그리운 오후
당신의 눈물을 보고 말았지
뚝뚝 뜨겁게 적시는 목 언저리

3
현실과 꿈 사이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어
시간마다 허연 갈망을 토해내고
울음소리 꺾여지는 내게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밀려와
경계에서 부서져 버리는 그대
내 몸을 부비며 살아도
어깨 사이 기지개가 절로 펴져
아지랑이 꿈 푸릇 살아나는
어느 따스한 봄날 하늘아래
함께 기대 서있을 때까지(시카고 문인회장)

몸을 뒤척일 때마다 떨어지는 가을입니다. 눈을 들면 가을은 먹먹히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계곡 저 산등성이에 숨이 차오를 때 까마득한 숲의 깊이로 바람소리는 굵은 리듬을 타고 숨쉬듯 가을을 벗겨냅니다. 하늘을 가르는 예리한 검의 섬광이 지나간 자리마다 한 웅큼의 머리가 빠지듯 숲 같은 언어들이 뽑혀져 갑니다. 그때 억새의 하얀 머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찬바람 한겨울을 마주할 겁 없는 장수의 수염처럼, 천년의 노련이 절로 풍겨납니다. 무릎 위로 살포시 앉은 가는 햇살위로 여기저기 기지개를 펴며 깨어나는, 한겨울 흔들리며 살아야 할 억새의 이야기가 처연합니다.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