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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함께 사는 세상

신호철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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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7/06 16:06

슬퍼지지 않으려면
안으로 눈물을 삼켜야 합니다
그래도 슬픔이 떠나지 않으면
그때부터 내가 지은 높은 벽
윗부분부터 허물어야 합니다
허물다 보면 벽 너머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요
낮아진 벽 넘어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입니다
바람이 부나 했더니
하루가 지나는 소리였습니다
슬퍼지지 않으려면
이젠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난이도를 통과 해야합니다
보려고 하면 눈을 떠야 하는데
눈을 감고 귀로 들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다른 세상의 것이지요
다른 이들의 세상도 귀하니까요
소리내지 않는 꽃, 나무들은
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눈으로 바라보다 보면
꽃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나무가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는
하루가 지나는 소리였습니다

연일 화씨 90도를 육박하는 치열한 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타들어가는 잔디를 살리기 위해 아침저녁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이미 자리잡은 오래된 나무가 아니면 수분을 일정량 공급해줘야 합니다. 손이 덜 가는 집 뒷편 코너에 물을주다가 유난히 큰소리로 돌아가는 에어컨디션 소리를 듣고 놀랐습니다. 켜질 때도 꺼질 때도 돌아가는 모터의 소리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집에서 30년을 살았으니 30년 동안 더위에 제 몸 돌보지 않고 시원한 바람 제공하느라 밤 낮으로 수고했을 생각을 하니 그 소리가 애틋하게 들렸습니다. "나 이제 당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꽃과 나무도, 기계도 돌보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함은 당연하거니와 살아있는 동안에도 제 기능과 역할을 다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작 돌보아야 할 제 몸은 등한시 할 때가 많습니다.

60살이 지나면서 몸의 모든 기능들이 약해지기 시작한답니다. 좁아진 혈관을 방치하면 고혈압으로, 무리한 관절을 계속 사용하면 관절염으로, 계속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따르는 합병증으로 몸의 구석 구석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회복이 불가능한 지병이 되어 남은 인생의 걸림돌이 됩니다. 정기점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 몸이 무슨 무쇠인양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눈 깜짝 할 사이에 일년이 지나갑니다. 다행히 아직 무병이고 정기적으로 먹어야 할 약도 없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 필요를 채워줄 때 비로서 편안해집니다.

잔디에 물주기가 끝나면 이제 긴 호수로 정원에 물주기를 시작합니다. 더위에 지쳐있는 나무와 꽃들은 갈증을 해소하고 더 파래지고 영롱해집니다. 처진 가지는 잘라주고 나무와 묘목들은 둥글게 모양을 만들어줍니다. 서로의 옆구리가 편안해지게 잔가지도 잘라줍니다. 그 사이로 바람이 흘린 땀을 씻어줍니다. 긴 오후가 지나고 햇빛을 피해 파라솔 아래서 다듬어진 정원을 바라봅니다. 말하지 못하는 꽃, 나무들이 "나 여기 있어요." 말 하는 듯 흔들립니다.

내가 쌓아 올린 담을 조금만 허물어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이해되고 공유되는 세상은 행복합니다. 간간히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뒷뜰엔 반딧불의 불빛들이 곡선을 그리고 맞은편 하늘엔 아이들 소리가 어우러진 함성과 함께 어둑해지는 하늘위로 불꽃이 퍼져갑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 행복한 꽃들의 미소, 흔들리는 나뭇가지, 반짝이는 반딧불, 폭죽 터지는 소리, 아이들의 환호, 간간히 굉음을 내며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하는 오래된 에어컨디션 소리, 그 시간 그 장소에 풍경이 되어 서있는 한 사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며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다. [시카고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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