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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탱고와 장례(葬禮)

최선주
최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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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7/10 15:59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시디가 돌아가는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거나 몸을 흔들면서 요리를 하는 주방장 엄마의 모습이 남아있을 것이다. 마치 톨게이트를 지나려면 요금을 내듯이 아이들도 주방을 드나들 때면 이름도 성도 없는 댄스가락을 선보이며 실없는 분위기를 돋우곤 했던 날들. 그때 주방에서 주로 흘러나오던 가락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가 아니면 탱고였고 빠질 수 없는 탱고곡은 단연 라 쿰파르시타였다.

20세기 초반 17세의 소년에 의해 작곡되어 탱고의 대명사가 된 라 쿰파르시타는 고교졸업 후 얼떨떨해하며 처음 들어섰던 음악다방에서 심쿵하게 들어왔던 추억의 곡이기도 했다. 들을 때마다 시공을 잊게 하는 회오리처럼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는 곡이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오면 부엌에 발을 들여놓던 아이들은 탱고스텝을 흉내낸 흥겨운 몸짓으로 익살을 떨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냥 입을 벌리고 눈알을 굴리던 새침떼기 막내도 마침내는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을 거두고 익숙해진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며 구성지게 몸을 흔들만큼 네 아이 모두 완벽하게 세뇌가 되었다.

“라 쿰파르시타도 내 장례식에 포함시켜라.” 아이들은 일상의 유언에 익숙해져서 그 곡까지 치면 몇곡이 정해졌는지 친절하게 되새겨 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있게될 장례식에 대해 칙칙하지 않은 의견교환이 평상시에 이루어졌다. 전도서의 저자는 죽음은 모든 이에게 닥치는 운명이므로 살아있는 자들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음"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초상집의 상주의 자리에 서본 이는 문상을 와 맞절하는 이의 무언의 그 위로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무언으로 토닥여주며 인간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의 인정과 슬픔을 용인하는 숭고한 나눔의 순간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머리속으로 느끼는 장례식’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리허설을 공유했듯이 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MRI를 찍는 과정에서 죽은 후 화장되는 순간도 그와 비슷할 거라 여겨지더라며 담담히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승화원에서 엄마가 한줌재로 인계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께로부터 들은 그 나눔이 큰 위로로 다가왔었다.

불과 이태전에 승화원에서 아빠의 관이 들어가던 입구에 쓰여있던 “화상주의”라는 검은 고딕체 글씨를 본 후 그 네글자가 화두처럼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기억이 있다. 삶과 죽음, 유와 무가 함께하는 현장이 비단 화장터 뿐이겠는가. 생과 사를 노래한 많은 시인들과 철인들이 그들의 순서를 맞아 떠났음을 새삼 떠올리며, 죽음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사랑하는 이들과 평상시에 대화를 해두는 것은 얼마나 의미 깊고, 살아남는 자를 위해 베풀 수 있는 큰 위안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결혼식은 흥분된 가운데 준비하는 이들이 누구도 예외없이 필연코 맞게 되는 마지막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으로 침묵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우리아이들은 어느날 눈물어린 눈으로도 웃으며 회상할 것이다. 음식냄새와 탱고가 어우러지는 따스한 부엌과 명랑하고 발랄했던 순간들을. 슬프지만 깊은 위로속에서 그들 말대로 예쁘고 웃기고 예측불허한 엄마를 떠나보내며 탱고가락의 감상 속에 함께한 시간들을 감사할 것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준비하는 뜻깊은 향연 속에서.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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