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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신호철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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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7/13 19:05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다. 이 순간 몰입과 투철함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풍요롭다 여기기 때문에 누군가는 가난해지고, 그 가난 때문에 누군가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조화는 단지 인간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매미의 죽음 앞에 있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매미는 나무밑 덤불 속에 몸을 움추린 채 죽어있다. 매미는 유충으로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7년 이라는 긴 세월을 캄캄한 땅 속에서 살아 온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미에 있어서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 시간 없이는 매미의 일생은 없는 것과 다름 없다. 애벌레로 성장하는 길고 긴 암흑의 시간 없이 매미의 처절한 노래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가지 더 아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땅 위로 나온 유충의 생사는 그 몸을 벗고 은빛 날개를 가진 성충으로의 탈바꿈까지 걸리는 6시간 사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간 동안 도처에 위험은 기다리고 있다. 개미와 말벌의 공격이나 거미나 새들의 먹이 사냥에 노출되는 동시에 매미는 긴 세월을 기다린 보람도 없이 세상을 보지 못한 채 그 운명을 마감 해야 한다.

다행이 부활에 성공한 매미는 바로 짝짓기를 위한 처절한 세레나데를 연출한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날개를 부비며 노래를 한다. 누가 한가로운 매미의 노래라 했는가? 처절하다 못해 자신을 찢는 절규가 아니던가. 마른 우물에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듯, 매미의 노래는 생명을 이어나가려 몸부림치는 숭고한 수고인 것이다. 산사의 수각(가뭄 때를 대비해 물이 흘러 오는 것을 모아 놓는 돌그릇)인 셈이다. 매미의 쿼렌시아(편안히 안식 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였을까? 긴 세월 땅속이었을까? 짧은 날 절규하던 나뭇가지였을까? 아니면 위험과 시련, 슬픔과 고통을 내려놓은 후 지금 주검으로 누워있는 숲속이었을까?

고국에서 날아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에 보이는 만물이나 존재가 꼭 허상같이 느껴지는 하루가 구름처럼 지나고 있다. 당신의 쿼렌시아는 어디였는가? 또 나의 쿼렌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는다.(시카고 문인회장)

그 그리움으로 잠들다

뒷뜰, 나무밑
매미 한 마리 죽어 있다
온 팔과 다리를
가슴을 향하여 움추리고
몸통 마디 마디
맨 마지막 꼬리까지
있는 힘 다해 굽혀
온몸을 안고 죽어 있다

땅 속 나무 뿌리 붙잡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낮과 밤 없이 기나긴 세월
우리도 없고 서로도 없이
외롭고 서럽게 살다가
땅 밖 세상에 나와
나무를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나무가지
꺼꾸로 매달려
물구나무 서서
물껑한 몸뚱아리
팔을 조금씩 키우며
다리를 쭈욱 뻗으며
마디 마디 꿈틀거리며
살과 뼈를 붙이며
눈을 껌뻑대며
촛점을 맞추며
흔들거리며
살아나며
망사 같은 네짝 날개를
뒷몸 겨드랑이에 접으며
감추었다 키우며
또 접었다 펼치며

2555일
깜깜한 땅 속에서
한을 삭히며
진땀을 흘리며
눈물을 글썽이며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며
풀들의 속삭임
가슴에 설레이며
시원한 바람
나무 그늘을 꿈꾸며
그렇게
그렇게 그리워 하며 태어나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아... 몇 일 몇 밤
기쁨의 세레나데를
쉼 없이 부르다가
슬픈 운명을
처절하게 토해내다가
아니 그렇게
날개를 부비며
부서지도록 부비며
타 버리도록 뜨겁게
뜨겁게 불 태우다가
뚝, 떨어져

뒷뜰 나무밑
매미 한마리 죽어 있다
온몸을 움추린 채
그리워하며
설레이며, 꿈꾸며
매미 한마리 죽어 있다
그 그리움으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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