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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무진과 시카고

최근 며칠 동안 시카고 지역에 안개가 자욱했다. 낮 최고기온이 40 ºF 안팎을 기록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잔설과 얼음이 시나브로 녹았다. 대기는 잘디 잘게 쪼개진 작은 물방울로 가득했다. 지난 금요일 밤 퇴근길은 불과 수 미터 앞만 겨우 가늠할 수 있었다. 앞차의 후면등을 따라 가느라 푸르스름하게 빛나던 고속도로변 가로등의 낭만과 운치를 느낄 틈도 없었다.

문득 무진시(霧津市)가 떠올랐다. 안개 자욱한 도시. 한 시대를 풍미한 감각적인 문체의 작가 김승옥이 그려낸 도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중략)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김승옥의 무진기행 가운데)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윤 모는 고향 무진을 찾았을 때 읍내 신문사 지국을 찾아간다. 오랜만에 가보는 이모님댁을 찾기 위해서다. 신문은 그만큼 지역 사정에 밝은 곳이었고, 지식인과 도회인들 생활의 일부였다.



한때 김승옥의 작품에 몰입했었다. ‘서울 1964년 겨울’, ‘환상수첩’, ‘무진기행’ 등. 60년대 청춘들의 소외와 허무를 담아낸 그의 글은 서걱거리면서도 묘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무진’이 인근 무안과 진도에서 따온 가공의 도시인지 한번쯤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 친구와 함께 무작정 나섰다가 그의 고향인 순천 선암사 동백꽃을 보고오기도 했다.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난감한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실체를 분별하며 사는 일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겨울안개는 찬 기운이 따뜻한 기운을 만나 생기는 것임을 상기하면 생각은 긍정적으로 변한다. 너무나 많은 논리와 주장들이 횡행하는 세상이 혼돈 상태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슬 퍼런 공권력의 통제 하, 또는 무기력함이 만연한 상태보다는 낫지 않나' 위로해본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시카고 겨울안개의 매력에 빠져 들다가 김승옥의 ‘안개도시’를 떠올리자니 시카고와의 인연이 더 각별하고 뭉근히 다가온다.

시카고는 크랩애플이 움을 틔우는 5월과 화살나무에 빨간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10월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하얀 눈으로 뒤덮인 대평원, 그 위에 낮게 깔린 겨울안개도 시카고를 더욱 시카고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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