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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미국 첫 방문 도시 시카고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운전하다 보니 들꽃이 활짝 피고 동네 꽃나무마다 꽃이 만개했다. 초록과 함께 찾아오는 싱그러운 4월이 되니 미국에 처음 여행 왔던 생각이 난다. 바람이 몹시 불던 1986년 4월 하순이었다. 뉴욕을 거쳐 시카고로 들어오면서 첫 번째 미국 여행이 시작됐다.

가스 기술 협회 IGTInstitute of Gas Technology에서 실시하는 "가스 배관망 운영" 관련 선진 기술 교육을 받기 위해 2주간 일정으로 방문했었다. 물설고 낯선 미국 땅을 처음 밟는데 혼자여서 긴장한 데다 날씨마저 추워서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한국은 봄꽃이 만발한 완연한 봄인 데 반해 그곳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미시간호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커서 바다라고 해야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호수를 지나는 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IGT 교육 참가자는 40명 정도 되었다. 가스 배관망 운영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도로 밑에 매설된 배관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도심에서 새어 나온 가스는 가스 폭발에 의한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공사 추진 주체와의 사전협의를 통한 정보교류로 가스 배관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



한국에서도 1994년 12월 아현동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엄청난 재산 손실을 초래했었다. Safety First,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디 가스 관리 분야뿐이랴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교육 기간 동안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교육을 소홀히 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미시간호를 배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마천루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선착장에 있는 요트들에 매혹되어 첫 주말에 있을 도심 관광에 한껏 들떠 있었다. 드디어 세계 최고 빌딩인 시어스 타워Sears Tower 해발 442m, 110층 높이의 전망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시카고의 시내 풍경은 정말 멋있었다. 바다보다 넓게 보이는 미시간호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하늘 높이 솟아있는 각양각색의 개성 있는 건축물들은 환상 그 자체였다.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작년에 준공한 여의도 63빌딩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자리를 UAE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해발 828m, 162층)에 내주고 이름마저도 윌리스 타워로 바뀌고 말았지만, 그 당시는 최고였다.



시카고 하면 19세기 중반 마피아들이 판쳤던 암흑가의 소굴이었다는 영화 대부가 연상되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출장을 떠나기 전에 그곳은 치안이 안 좋으니 야간에는 외출을 절대 삼가고 낮에 교통시설을 이용할 때도 항상 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던 터라 늘 긴장을 하고 다녔다. 지하철도 일부 도심 지하철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물 사이에 설치된 교각 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시설이 노후되고 내부가 지저분했으며, 흑인 등 저소득층만 이용하고 있었기에 더욱 을씨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Chicago Architectural River Cruise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시카고 강의 양쪽에 늘어선 빌딩 숲을 감상하면서 어수선했던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주요 건물들을 지날 때마다 가이드로부터 재담과 함께 그 건물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깝지만 1871년 10월에 발생했던 시카고 대 화재의 슬픈 역사를 딛고 급성장한 활기찬 변모를 볼 수 있었다.



육상으로 올라와 시어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며 다운타운을 천천히 살피던 중 시카고 대화재 당시 유일하게 화마를 면한 '워터 타워Water Tower'을 보게 되었다. 1869년에 건축된 워터 타워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고급 주택가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Pumping Station의 본관 건물 저수탑이었다. 대부분의 목조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대리석 건물인 워터 타워는 남아,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불은 시카고의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도시를 3일 만에 거의 다 태웠다.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중 가장 큰 규모였으나, 화재 이후 재건을 통해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큰 경제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시카고 재건을 위해 유명한 건축가들이 각처에서 모여들면서 그곳은 건축가들의 실험장이 되어 지금의 아름답고 독창적인 디자인의 마천루들이 만들어졌으니, 한 마디로 전화위복이 된 좋은 예라 하겠다.

2014년 여름에 아내와 함께 미국 중부 대평원 몇 개 주를 랜터카로 여행했는데, 출발 도시를 시카고로 정해서 내가 감동하였던 마천루들을 아내에게도 보여주었다. 날씨도 춥지 않아 좋았고, 아내도 처음 본 시카고 풍경이 정말 멋있다는 찬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과 좋은 인연들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와 우리 가족을 미국에서 살게 한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안전제일'이라는 생활 철학이 몸에 배어있는 기술자이다. 그러므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유명 도시 발전사를 살펴보면 화재나 전쟁의 참화를 딛고 새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도 그랬었고,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및 한국의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시카고를 미국 내 어느 도시보다도 사랑한다. 시카고는 내가 미국에서 처음 방문을 했던 도시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대화재의 참상을 겪고도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든 시카고 시민들의 열정에 반했고, 도시 자체가 정말 아름답고 멋있기 때문이다.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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