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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잔디에 누워

현장사진. 2019. 1. 30 찍음. 사건 발생후 24시간 경과. Photo by 조소현

현장사진. 2019. 1. 30 찍음. 사건 발생후 24시간 경과. Photo by 조소현

현장사진. 2019. 1. 30 찍음. 사건 발생후 24시간 경과. Photo by 조소현

현장사진. 2019. 1. 30 찍음. 사건 발생후 24시간 경과. Photo by 조소현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날의 푸릇푸릇한 잔디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 새싹이 돋는 듯하고, 얼른 넓디 넓은 돗자리를 펴 그 위에 마구 누워 버리고 싶다. 이 돗자리 위에는 나 말고도 그리운 얼굴들이 있다. 이 년 넘게 못 본 아빠도 앉아 있다. 허허허. 하시는 웃음을 띠고 말이다. “아빠, 미국에 처음 온 거지? 그런데 어떻게 이 돗자리로 바로 날아 오셨슈?” 엊그제도 전화를 했는데, 달달달 경운기 소리가 배경으로 들려왔다. 사시사철 비닐 하우스를 내 집처럼 드나드는 아빠는 농사일을 손에서 놓기를 거부하신다. 미국으로 시집간 딸은 6년만에 처음으로 아빠를 미국 땅에서 만났다. 아, 일 년 만에 보는 엄마도 있고, 오라버니들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덩실덩실 춤추듯이 잔디밭 위 돗자리에서 즐거운 한 때를 함께 보내고 있다.

그런데 꿈이었다. 꿈은 마치 조르주 쇠라의 그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았는데, 현실은 뭉크의 <절규> 에 가까웠다. 이틀 전인 월요일은 내게 휴일이라 혼자 한국 마트에 가서 김치와 두부를 샀고,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잠을 자는 동안 머리가 좀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여덟 시. 일어나자마자 ‘털내미’(털+딸내미) 산책을 나갔다. 간밤에 응가와 쉬야를 참았을 애완견을 생각해서 내 게으름을 방지하고자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서 잠바를 꺼내 입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물도 마시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십 분쯤 지났을까. 잔디밭에 도착했다. 잔디밭은 아침 서리가 얼어 허옇다. 푸른 잔디는 커녕 보기만해도 차가움이 전달된다. 그런데 그 잔디에 도착하니, 강아지 줄은 여전히 내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이 빙글 뱅글 돌아간다. 그 순간 ‘어어, 이게 뭐야? 아니 왜 내 몸이 주체가 안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툭,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눈을 떠 보니 글쎄 눈 앞에 온통 그 하얗고 푸른 잔디가 쫙 깔려있다. 나도 모르게 그 짧은 순간 오른쪽으로 기절을 했다. 허허허. 아빠가 웃는 그런 사람 좋은 웃음은 아닌데 그와 유사한 소리가 나왔다. 어이 없음이 담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야? 영화도 아니고. 혼자 개 산책 시키다가 오른쪽으로 기절한거야? 사태의 심각성보다 그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되었다. 약간 머리가 아팠다.

집으로 돌아와, 간호사 도움 전화(Nurse Advisory Line)에 전화를 걸었다. 내 이야기를 쭈욱 듣더니 그녀는 ‘이알Emergency Room에 갈 필요는 없지만 어전트 케어Urgent Care에는 가 보란’다. 만약 머리가 아픈 게 지속되면 그건 안 좋은 징후라면서 말이다. 여기서 새로 배운 영단어는 버티고 Vertigo 현기증이랜다. 샤워를 하고, 일단 개를 데이케어에 맡겼다. 구글 지도에서 말해주는 대로 어전트 케어에 들어갔다. 처음 가 본 길과 병원. 긴 긴 기다림 끝에 간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이거해 봐라 저거해 봐라 갖가지 동작들을 시켰다.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그녀의 손가락에 갖다 대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다만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할 때는 다시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고, 내 몸도 앞뒤로 흔들리는 것 같다. 그녀는 또 내 말을 듣더니, ‘훔. 어지러운것과 두통은 차이가 있는데, 만약 이 둘이 함께 있다면 원인을 파악해야 하니, 이알에 가 보’란다. 이알. 미국의 병원비는 나처럼 운 좋은 사람에게도 무서운 대상이다. 남편 덕에 의료 보험이 무료이긴 한데, 그래서 내가 내는 돈이 없다 치더라도, 청구서에 나온 숫자들은 뭔가 내게 심적 부담감을 준다. 남편에게 뭔가 밥이라도 한끼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다. 그래도 일단 밥을 수십끼 더 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간호사가 한 말이니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그녀는 심지어 내게 운전을 하지 말란다. ‘대신 운전해 줄 사람 없어요?’ -네. 없어요. 이 도시엔 남편 밖에 없고, 이 나라엔 친정 식구가 없는걸요. 나 불쌍하죠? 불쌍 코스프레를 하려고 했으나, 그땐 나도 정신이 들었다. 길을 가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 것도 아니고, 말그대로 기절을 해서 잔디 위로 쓰러졌으니 확인을 해야 한다. 내 머리통이 멀쩡한지를……
간호사에겐 우버를 불렀다, 말하고 혼자 조용히 차를 몰고 이알로 갔다. 구글 리뷰에 나오는 이알은 왜그리 온통 나쁜 리뷰만 있는지 가 보기도 전에 우울감이 덮쳤다. 기본 대기시간이 4시간이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알Emergency Room이라고 이름을 부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구글 리뷰를 읽은 게 나았다. 오후 두 시 반에 들어가서 저녁 일곱 시에 나왔고 그 중 팔 할은 대기시간이었다. 환자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캣스캔을 찍고, 피를 뽑고, 아이브이 주사도 맞고, 소변 검사까지 했다. 그러지 않아도 피검사로 당뇨, 빈혈 확인을 하고 싶었는데 이왕 여기 온 김에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 유일한 1인인 남편이 일에서 빠져나와 병원에 왔다.

모든 결과가 굿이었다. 당뇨도, 빈혈도 없다. 다만 저혈압이 있는데 공복에 물도 안 마신 상태에서 이 추운 겨울 아침의 개 산책은 나를 기절하게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또 한가지 그 차가운 잔디에 살갗을 대었을 때, 아, 정말 어쩌면 인생은 생각보다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언 이슬이 달린 잔디들이 내게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짧은 생애를 나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돈 벌기는 포기할 수 없다. 대신 돈 버는 것이 곧 내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는 일이 아니어도 된다. 어느 정도 삶의 안정성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돈이지만, 일자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



쓰기다. 쓰기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다. 사실 왜 쓰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막막하고, 쓰는 행위 자체에 도달하는 것도 무척이나 지루하고 지난한 난간들을 통과해야 겨우 몇 장 쓴다. 그럼에도 잔디들은 내게 속삭인다. ‘그래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써야해. 그게 너가 너 자신이 되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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