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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언론 자유는 한인사회 이슈독립

모국정부가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한인사회
주장없이 눈치보는 단체, 존재이유 없어
한인의식 깨어나야 동포사회 변화 이끌 수 있어

버지니아대학(UVA)의 토마스제퍼슨 3대 대통령 동상

버지니아대학(UVA)의 토마스제퍼슨 3대 대통령 동상

토마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민과 미국인들의 자랑을 넘어서 전세계 모든 언론인의 우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문이 극단적인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인용하는 제퍼슨의 명언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가 과연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당시 전세계 유일한 공화국인 미합중국을 만든 국부 중의 한명인 제퍼슨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연원을 따져뵤자. 그는 1786년부터 1788년 사이 프랑스 주미대사로, 혁명의 기운이 충만한 파리를 체험했다. 그는 1789년 왕정이 전복되는 대혁명의 크라이맥스를 보지는 못했으나 지하신문이 부르조아 혁명의 불쏘시개가 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왕은 물론 대통령 권력조차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제퍼슨은 당시 지배계층으로부터 절대 환영받지 못했던 신문매체의 중요성에 눈을 떴으며, 신생 공화국 미국에서 연방주의자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신문을 주목했던 것이다.

18세기 미국 의회는 지금과 같은 견제기능이 매우 부실했었다. 프랑스의 원시적 사회주의자와 인민주의자와도 교류했던 공화주의자 제퍼슨에게 신문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원형적 민주주의 이상향과 같은 것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방종 수준으로 이해하는 집단이 간과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제퍼슨은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모든 사람이 신문을 읽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신문을 구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8세기말 프랑스와 미국의 문맹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엇갈리는데, 성인남성만 하더라도 90% 이상이다. 그가 말하는 극단적인 언론의 자유는 사실상 공상적 선언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맹률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21세기 미국과 한국은 오히려 언론의 자유가 국가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신문없는 정부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나라는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국인들의 신문을 포함한 언론 신뢰도는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인커뮤니티로 시야를 좁혀들어가다보면 과연 18세기 제퍼슨의 언론 자유와 21세기 한미양국의 가짜뉴스나 언론신뢰도에 끼여맞춰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한인언론을 비하하기 전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 불신의 시대에 덩달아 욕을 먹고 누려보지도 못한 언론의 자유가 과다하다고 손가락 질 당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기능을 떠나 대중과의 상호작용 속에 존재한다. 언론은 대중이 원하는 이슈를 따라가는 대중추수주의의 원조격이다. 언론이 이슈를 억지로 만들다보면 ‘기레기’가 된다.

신문은 태생부터 선전선동매체이긴 하지만, 부르주아나 왕당파,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어느 한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였을 뿐, 대중의 필요에 복무하며 대중의 이슈를 추종하는 대중매체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폭스뉴스가 트럼프를 추종하는 이유는 그 시청자가 트럼프 지지계층이기 때문이다.
한인언론이 어언 반세기를 넘어가고 있지만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이슈를 발굴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의 수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욕한다고 잡혀가는 한인언론 기자를 본 적이 없다. 한인사회의 형식적 언론 자유는 문제가 될 소지가 전혀 없다. 탄압하는 정부가 없기에 언론자유는 의미가 없다. 문제는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다.

한인독자가 한국의 종속변수로 남길 원하는 한, 한인언론은 영원히 이슈 자립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한인언론의 자유는 한인사회만의 이슈 독립에 달려 있으며, 이는 한인 개개인의 자각에서 비롯돼야 한다.
동해병기와 독도, 정신대, 평화통일 이슈가 중요하긴 하지만 한국이슈를 마냥 추종하다가 헛발을 디딜 수 있다.

한국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너무도 당연한 재외동포 참정권을 ‘허용’했으나 정작 필요한 한인2세 이중국적 굴레를 벗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 사주 받은 한인인사를 동원해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트럼프를 지지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게 만들고, 한미자유무역협정 의회비준을 위해 국정원이 동원된 이름뿐인 풀뿌리 민주주의 서명운동 공작정치를 서슴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동포들은 머리검은 외국인’이라는 인식을 거두지 않는다.

유태인처럼 모국의 이익이 동포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도 않는다. 이슈가 한국에 계속 종속된다면 미국정치인에게 불법 뇌물을 먹여 탈이 났던 코리아게이트 수준의 역학관계가 유지될 뿐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애국심을 조장해 멀쩡한 한인 공무원으로부터 정보를 빼내 간첩죄를 뒤집어씌우고 나몰라라 하는 집단이다. 간첩죄로 복역한 한인들은 귀화시 미국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기 때문에 가중처벌 받았다. 이것이 바로 한인들의 현실이다.

한국과 미국은 전혀 다른 문명권이다. 한국은 왕조와 식민시대, 전체주의 독재 정권을 지나오며 대중을 굳이 일깨우려하지 않으려는 몹쓸 관행을 이어오고 있지만, 전세계적 근대문명기를 함께 보낸 미국의 국부들은 “깨어나지 못하면 족쇄를 차게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기 위해서 문맹을 퇴치하고 신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은 깨어있지 못한 대중을 집단의 힘으로 강제하며 깨어난 이들을 배제해왔으나, 미국 문명의 토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치로 부여해야 질서가 유지되고 시장의 자율이 유지되는 분절적 개인주의 사회다.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면 곧바로 족쇄를 채워버리는 사회다. 간첩이 된 한인이 독립된 개인이 되지 못하고 한국의 종속변수가 되는 순간 족쇄가 채워졌다. 미국에서 독립되지 않을 자유와 스스로 보호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시스템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제퍼슨이 신문을 통해 얻고자했던 가치 또한 '깨어난 시민'의 조직에 있었다.

그들은 깨어난 시민을 조직하고 그들이 만든 이슈를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한 말에도 대문자를 썼다. 신문사 문선공의 편의를 위해 대문자를 뜻하는 어퍼케이스 레터(UPPERCASE LETTERS)라는 관용어를 만들어냈는데, 대문자가 너무 많이 필요해지자 따로 케이스를 만들어 선반 위쪽에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사는 버지니아에서 나온 말이다.

깨어난 시민, 그들이 총을 들어 영국에 맞설 수 있었다. 삼일만세운동이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식민 굴레를 벗어나야겠다는 전국민적인 자각이 위대했기 때문이다. 빨리 벗어나야 우리는 진정한 독립적 자아를 갖춘 진짜 '시민권‘을 얻는다.

한국의 국가주의자 집단은 한인을 떠다니는 항공모함으로 비유하지만, 우리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길 원해야 한다. 한인언론의 자유는 향수를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둔갑술에서 벗어나 오히려 한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의 낡은 이념 부산물인 진보와 보수 프레임이 한인사회에 이식돼 빚어낸 부작용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곳을 닮은 허다한 한인단체 동정기사는 일반적인 한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1세기 한인언론의 자유는 정부 간섭이 문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로 남을 뿐이다.

18세기 미국의 공화주의자가 21세기 한인단체를 관찰한다면 “한국정부의 몇푼되지 않는 지원금에 자주성을 팔아넘기는 집단”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제퍼슨이 말한 언론자유의 전제조건인 ‘문맹률 제로 사회’는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대적으로 계몽된 이성인 집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깨어나야 우리의 문제가 보이고 이슈를 만들 수 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묻힐 한인은 0.1%도 되지 않는다. 이 깨달음이 없다면 한인 이민이 또다른 100년 역사를 맞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김옥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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