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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김 영 종

'기업인 신춘호'같은 정치인, 어디 없소?

요즘 일방적으로 질타 당하는 이명박정권의 모습을 보노라면, 꼭 20년전 삼양라면 우지파동 때와 흡사한 면이 여럿 발견된다.
해명이나 설명이 먹혀들지 않는 '성난집단' 분위기 속에서 일방적으로 묵사발이 나고 있다는 점이 특히 닮았다.
그 때도 문제의 발단은 지금과 똑같이 '미국 소' 였다.

1989년 가을, '라면을 공업용 기름으로 튀긴다'는 내용의 익명의 투서 한장이 검찰에 접수되면서 시작된 사건이 바로 '삼양라면 우지파동'이다.
검찰이 삼양의 고위간부들을 줄소환 하면서 언론에 보도되자 온 나라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럼 우리가 지금껏 재봉틀 기름으로 튀긴 라면을 먹었단 말인가?"


'공업용기름'이라니까 '재봉틀기름'을 연상한, 앞뒤 안가린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그 분위기에 편승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수사착수 바로 다음날 잽싸게도 '식품살인'이라는 매우 위험하고도 선정적인 단어들을 총동원해 '식품비리 파헤치기' 시리즈를 시작했고, 온 나라안이 순식간에 식품공황에 휩싸인 가운데, 수십년간 칭송받던 삼양식품은 하루아침에 초토화가 돼갔다.

백발이 성성한 삼양 전중윤회장이 불같이 노했다.
대뜸 보사부 담당공무원을 찾아가 따귀를 올려붙인 전회장은 곧장 검찰청사로 달려가 사건을 담당한 젊은검사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 혁명공약 제4조가 뭔줄 알어? 내가 그거 해결한 사람이야!"
5.16혁명공약 4조는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로 시작된다.
실제로 전회장은 60년대초 남대문시장에 갔다가, '꿀꿀이 죽'을 사먹는 지게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선 라면 개발에 착수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찌꺼기를 드럼통에 담아 끓여 한그릇에 5원씩에 팔았던 꿀꿀이 죽 통에는 양담배 꽁초까지 섞여 있었지만, 그조차 다 팔릴까봐 발을 동동거리며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국내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첫 출시된 것은 1963년, 가격은 10원이었다.
69년 월남에 첫 수출이 시작된 후 이어서 미국 러시아 유럽을 비롯해 동남아 중동 중남미등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됐다.

당시 값싸고도 맛있었던 라면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골서 올라온 자취생들 중에는 1주일 내내 하루세끼를 오로지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회장에겐 또하나의 자존심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종필총리와 남덕우 경제기획원장관을 시켜, 산간지역 노는 땅을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개발후 거의 무상으로 소유권을 이전해 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때 한진그룹 조중훈회장에겐 현재 생수를 뽑아내고 있는 제주도 제동흥산 자리가, 삼양 전중윤회장에겐 목장으로 개발된 대관령이, 삼성 이병철회장에겐 '에버랜드' 자리인 용인 산간지대가, 국제 로비스트 한모씨에겐 지금 꿩사냥터로 유명한 서귀포 중문단지옆 100여만평의 척박한 땅들이 각각 맡겨졌다.

현재 소유권은 각 개발기업에 이전된 상태다.
하지만 전중윤회장만은 박정권의 이같은 후한 제안을 사양했다.
"내가 땅이 탐나서 막대한 돈을 들여 그 험한 대관령에 길을 내고 초원을 만든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조금씩이나마 대대로 무공해 우유를 먹을 수 있으면 큰 기쁨"이라며 한사코 소유권 이전을 하지않은 터였다.

 하지만 성난 군중앞에선 어떤 공적(功績)도 소용없었다.
"미국에선 쇠뼈를 식용으로 분류하지 않을 뿐,쇠뼈기름이 팜유보다 영양가도 높고 수입가격도 비싸다"는 설명도, "농심,오뚜기,빙그레등도 여직껏 쇠뼈기름을 써왔다"는 항변도 전혀 먹히질 않았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지 사흘째 되던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농심라면 각 지방공장에 근무하는 연구원들과 기술진들이 속속 롯데호텔로 모여들었다.
업계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하고 생각했다.
2위 농심이 1위 삼양을 이 기회에 '완전박살' 내려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웬걸!
이튿날 농심 기술진과 연구원들은 보사부, 검찰청, 법원, 언론사들을 찾아다니며 일반 예측과는 정반대로 "우지가 해롭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동종 기업간 경쟁이 엄청 치열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기자들이 어안이 벙벙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기자들이 농심홍보실 김춘복 실장(현 강남차병원 부원장)을 다그쳐 끌어낸 '농심의 삼양돕기 전말'-.
신춘호 회장이 "이러다간 대한민국 라면시장 전체가 붕괴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서민들만 곯는다.
라이벌이지만 삼양을 돕는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며 자사소속 연구원과 기술진 총동원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요즘 본국상황을 보면 아슬아슬 하기 짝이없다.
치솟는 개스값과 쌀값, 서있는 화물차량, 부두에 묶여있는 어선들, 수십만 청년백수---악재란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형국이다.
하지만 나서는 정치인이 없다.
'촛불군중' 눈치만 볼 뿐 최근 "박근혜가 나서야 한다"는 소리만 간간이 나온다.

삼양은 그 후 1996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치명적 상처는 회복불능 상태다.
하지만 당시 삼양을 "때려잡을 악덕기업"이라며 길길이 날뛰던 군중과 이에 편승한 일부 언론사, 정치인들은 "아니면 말고~"식이다.

 어디, 기업인 신춘호같은 정치인 대한민국에 없는가?
한국이 이래서 '기업은 2류, 시민정신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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