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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참다운 거지'가 되고 싶다

어둠이 익어가는 저녁, 길 모퉁이에서 분주히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쓰레기통을 열고 버린 음식물을 자신의 마차에 옮겨 싣는가 하면 간혹 그것을 떼어먹어 보기도 하지만, 주변이 침침한 저녁 빛으로 물들기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허접스런 쓰레기통에서 먹을거리를 사냥하는 동물, 인간. 생존의 위기 상황에서 한 끼의 먹거리를 절실하게 찾는 그는 헙수룩한 한 마리의 동물로 전락한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여자였다. 몸의 귀퉁이마다 삭아 뼈만 남은 앙상한 야산 같은 그녀는, 삶의 상처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듯 하다. 견딜 수 없는 굶주림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깎아버렸는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수치심조차 실종된 듯 싶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기에 세상이 이름 붙인 '거지'. 세상일이나 세월의 흐름조차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지, 거지는 세간에 발조차 들여 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자신을 낮추다 못해 자기라는 껍질마저 훌쩍 벗어던진 거지는 어느새 작은 가슴이 비워져 텅 빈 그릇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의 가슴에서는 이글거리는 하루의 태양이 장렬하게 소각될 수도 있고, 삶의 희로애락조차 바람처럼 지나칠 수 있을 듯싶다.

쓰레기 통을 한참 뒤적이던 그녀가 길 한 모퉁이에 걸터앉는다. 그러자 그곳은 그녀의 아늑한 집이라도 된 듯 아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보금자리의 천장이 될 푸른 하늘과 몸을 눕힐 수 있는 따뜻한 갈색 흙이 아니던가. 자연과 하나가 된 그녀는 어쩌면 시공을 초월해 땅과 물과 화기와 바람 모두와 함께 하나를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면 걸인에게는 세상 잣대가 만든 삼차원의 삶을 가로 지르고 뛰어넘는 과감성과 대담성이 숨어있다. 그래서인지 거지는 한 곳에 매이지 않는 방랑을 끝없이 추구한다.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그의 가슴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넉넉한 자유로움이 푸른 강물처럼 넘실거리기 때문이리라. 한없이 열린 자연처럼 거지의 영혼 속에는 어쩌면 세속의 눈으로는 잴 수 없는 어떤 철학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삶에는 물질이 아닌 영혼의 거지도 있을 듯싶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갈증을 비우지 못해, 허기진 욕심으로 일순간 비굴한 영혼의 거지로 전락하였던 내가 아니었던가. 차라리 한 끼의 먹이를 구걸하며 빈 밥통을 채우는 거지가 오히려 정직할지도 모른다며, 한 순간 얼마나 그를 부러워했던가. 짧은 순간이나마 영혼의 거지로 전락해 허름한 세간의 쓰레기통을 뒤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끝없이 욕심을 채우려는 가슴들은 비슷한 혼의 걸인들과 합세하며 세상은 점점 더 아수라장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기에 자유롭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거지, 한 벌의 옷조차 소유하지 않은 청정한 영혼만이 진정한 거지가 되어, 세상 모두를 소유하는 풍요로운 부자가 될 듯 싶다. 욕심이 가득한 삶 속에서, 오늘 하루 참다운 거지가 되고 싶어진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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