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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59>북미 식민사 25-북해 해전6

7월 30일까지의 전투에서 에스빠냐 함대는 함선 16척과 8000명의 병력을 잃은 반면 영국 함대는 겨우 7척의 손실을 보았다. 결국 패주하던 에스빠냐 함대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해안에서 또 다시 위력적인 돌풍을 만나 수십 척의 함선이 침몰하면서 다시 8000여 명의 병력을 잃었고 그간 질병으로 사망한 병력까지 합쳐서 모두 1만여 명의 병력 손실을 보았으며 에스빠냐 북부의 산탄데르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66척의 선박만 남아 있었다. 패주하는 동안 다시 50여 척이 사라진 것이다. 영국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 해전은 다른 해전에 비해 상당히 특이했다. 양측이 전력을 다한 대규모 전투 한 번도 없이 그냥 국지전만 별였는데도 에스빠냐 함대가 큰 피해를 입고 패주한 것이다. 물론 중요한 원인이 북해의 폭풍 때문이라 하더라도 무적함대 해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하여 전투에 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 그저 그런 해전이었다.

어쨌거나 이 해전을 계기로 서로의 갑판에 뛰어올라 하던 중세의 백병전 전술은 사라지고 명실상부한 함포전 시대가 열렸다.

이름만 거창하게 무적함대였지 함선과 포의 성능 모두 영국 함대에 뒤진 데다 전략도 뒤떨어졌고 지휘관도 시원치 않았으며 보급마저 받기 어려웠는 데다가 네덜란드 함대까지 영국에 가세하여 에스빠냐는 북해 해전에서 이길 요인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당시 후랜시스 윌싱엄이 구축한 영국의 정보망은 아주 뛰어났다.

영국의 정보망은 이미 무적함대가 내습하기 1년 전에 침공을 예측했고 결과까지 추정했다. 당시 영국의 정보망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지금의 M16 의 모태가 된 것이다. 어쨌든 에스빠냐의 무적함대는 지게 되어 있던 것을 진 것뿐이었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중앙교육문화센터 스패니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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