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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이중섭을 만났나봐요"…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강원희씨

'살아생전 소를 그리다가 소도둑으로 물렸다던 이중섭, 기어이 이승의 소 한 마리 훔쳐 별자리를 따라 갔구나.'

LA에 거주하는 동화작가 강원희(64)씨가 지난봄 응모했던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강씨는 이미 한국에서 동화작가로 여러 권의 동화책을 출간했고 지난 2003년에는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부문에서 가작으로 입상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당시 강씨의 딸인 조정민씨가 시부문에서 입상해 '모녀 수상'으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강씨가 그저 동화작가로 그의 창작인생이 머물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의 끈질김 덕분이다. 실제 인터뷰를 위해서 본지를 찾은 그가 들고온 두 권의 책을 보면 그가 이번 '별자리를 따라간 이중섭'이라는 시로 대상을 받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 1992년 동아일보를 통해 이중섭에 관한 평전(이중섭: 난 정직한 화공 이라 자처 하오)을 냈고 청소년용 동화책(천재화가 이중섭과 아이들.2006년)을 펴낸 이중섭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쓰는 대상이 '화가 이중섭'이었기에 길게 표현되면 평전이나 동화책이었고 짧게 표현되면 시였던 것이다.

꿈 속에서라도 그를 만나 그에게 왜 그런 그림을 그렸냐고 끊임없이 묻고 … 그를 이해하고 그를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중섭의 슬픈 인생, 가난하지만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이 바로 글로 바뀌어 작품이 됐습니다."

강씨의 시를 읽노라면, 세상을 짧게 살다간 이중섭의 묘지 옆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시 구절 속에 들어 있는 이중섭의 작품도 떠올리게 된다. 올해로 탄생 100년이 되는 화가 이중섭에게 헌사하는 시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것같다. 특히 잘 알려진 소 그림 말고도 게를 그린 것들이 배고파서 게를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미안해서 많이 그렸다는 얘기와 그에게 따뜻한 밥 한사발과 간장게장을 곁들인 저녁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강씨는 "이중섭의 생애 자체가 매우 동화같다"며 "가족들과 헤어져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 그 자체가 모두 동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동화나 소설을 계속 쓰고 싶었지만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딸의 외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로서의 역할 때문에 짧게 쓸 수 있는 시가 좋았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아메리칸 인디언과 관련된 책을 쓰고 있다고 전한다. 머지 않아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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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를 따라간 이중섭

강원희



소머리국밥집에 걸려있던 이중섭의 소 그림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다면
이중섭은 마흔에 푸른 세상을 등지지 않았으리
올 해 이중섭의 나이 백 살
이중섭은 죽어서도 허기져 나이를 먹는구나


망우리 공동묘지 이중섭의 묘
이중섭의 묘에는 개미도 게 그림을 그리는지
게딱지에 다닥다닥 붙은 개미들
누군가 묘지 한 귀퉁이에 게를 묻어놓았구나


살아생전 서귀포에서 아이들과 끼니가 없어
잡힐까봐 뒷걸음질 치는 게를 너무 많이 잡아
미안하고 또 미안해 게를 그렸다는 이중섭
그가 그린 ‘달과 까마귀’ 둥근 달 밥상에
뜨신 밥 한 사발에 밥도둑 간장게장 곁들여
개밥바라기별 뜨기 전 저녁 한 상 차려주고 싶구나


지금쯤 이중섭의 묘지 안은 시끌벅쩍하겠다
복사뼈에서 돋아난 꽃들로 ‘도원’처럼 눈부시겠다
은종이 그림 속에서 썰물처럼 빠져나온 게들은
이중섭의 엄지발가락을 물고 세상 밖으로 나가자 보채고
꽃비늘 단 물고기들은 비린내를 풍기며 무덤 속을 헤엄쳐 다니겠다
이중섭은 고구려 고분처럼 제 무덤 속에서도 벽화를 그리는지
그가 그린 황소는 어디로 가고 별자리만 남았구나


누군가 ‘흰 소’를 타고 워낭소리 울리며 뚜벅뚜벅
무덤 속을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는데
살아생전 소를 그리다가 소도둑으로 물렸다던 이중섭
기어이 이승의 소 한마리 훔쳐 별자리를 따라 갔구나


글·사진=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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