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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눈물 나눌 수 있는 사람끼리 먹는…

이종호 / 논설실장
이종호 / 논설실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03/11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03/09 14:25

이종호의 LA 음식열전 (4)
순댓국

친근하고 만만하다. 부담없고 편하다. 그러면서도 영양 듬뿍이다. 가격 대비 이만한 보양식이 없는 것 같다.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LA 한인타운 '무봉리 토종 순대' 순댓국

LA 한인타운 '무봉리 토종 순대' 순댓국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푸드'

#. 순댓국은 여간 편한 사람, 가까운 사람끼리가 아니라면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내용물과 모양부터 질펀하다. 돼지 창자, 내장, 귀, 간 등의 단어가 주는 어감도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순댓국을 파는 식당들도 하나같이 '허름한' '시장통' '서민적'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땀 뻘뻘 흘려가며 게걸스럽게 먹어야 하는 순댓국이 격식을 차리거나 중요한 비즈니스 상대와는 짜장면 이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댓국이 서민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엔 순댓국 역시 다른 고깃국과 마찬가지로 '있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는 기록이 여러곳에 남아있다. 순댓국이 서민 음식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다. 국가적으로 양돈사업이 장려되면서 돼지가 흔해졌고 순대의 주 재료인 소창(작은창자)값이 크게 내려간 게 배경이다. 속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값싼 당면으로 채워지면서 더 대중화가 되었다.

LA 한인타운 '8가 순대' 순댓국

LA 한인타운 '8가 순대' 순댓국

순댓국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옛날을 되새김할 수 있는 소울푸드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많이 한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았을 때 고기가 먹고 싶으면 대신 찾던 음식이었다거나, 어렵게 힘들게 일하면서 뜨끈한 순댓국에 소주 한 잔 걸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하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말이다.

나도 그랬다. 순대라고는 구경도 못했던 시골(?) 촌놈이 서울 유학와 사실상 처음 순대와 대면한 것은 신림사거리 시장통 '순대타운'이었다. 쑥쑥 썬 순대에 귀, 내장, 간 같은 돼지고기 부산물을 넣고 파, 깻잎 등 채소까지 듬뿍 넣어 불그레한 양념에 버무리며 커다란 불판위에 쓱쓱 볶아주던 '신림시장 순대'의 특별한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 순대나 순댓국을 먹으며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 그 순대맛이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LA서 발견한 순댓국의 진가

부에나 파크 '아바이 왕순대' 순대탕

부에나 파크 '아바이 왕순대' 순대탕

#. 서울서도 순댓국을 안 먹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댓국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미국, 그것도 LA에 와서였다.

2006년, 뉴욕에서 LA로 옮겨오고 난 뒤 우연히 '웨스턴순대'를 들렀다. 한인타운 웨스턴과 6가에 있던 유명한 집이었다. 2016년 그곳 사장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첫 대면 때의 맛과 분위기는 지금도 기억한다.

진한 국물과 국수 사리와 푸짐한 건더기, 그리고 부추, 들깨, 새우젓 등으로 내 입맛대로 다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했다. 윤기 자르르르 흐르는 흰쌀밥은 더 좋았다. 누구는 몸에 안 좋다고 흰쌀밥을 멀리 한다지만 그 식당에서만큼은 '보약' 먹는 기분으로 꼭 흰쌀밥을 한 그릇 뚝딱 해야 했다.

그 후 올림픽과 노턴에 있던 '유향순대' 순댓국도 자주 맛보러 갔다. 2010년 말부터 탈북자 부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자극적인 양념을 덜 쓰는 담백한 맛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유명세와는 달리 몇 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고 말았다. 한인타운에서 식당 꾸려나가기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어서 오래도록 마음이 아팠다.

자주 가던 집이 없어진 후엔 단골로 찾아가는 순댓국집은 더 이상 없다. 그래도 마치 인이 박힌 것처럼 순댓국도 때가 되면 한 번씩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되었기에 입맛 당기면 그때그때 발 가는 대로 찾아가는 곳들은 있다. LA 한인타운에선 올림픽길의 '무봉리토종순대', 8가와 후버의 '8가순대', 웨스턴과 8가 인근 '한국순대' 등이 그런 집이다. 오렌지카운티에 근무했을 때는 부에나파크 스탠턴길의 '아바이 왕순대'를 꽤 자주 찾았다.

사람 입맛이 제각각이듯 순댓국도 누구는 이 집이 좋다, 누구는 저 집이 잘한다 하며 의견이 갈린다. 나로서는 다들 LA에서 순대 전문 간판 내걸고 오래도록 영업해 온 집들이어서 그런지 먹어서 실패한 경우는 별로 없다. 모두 웬만은 하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독보적으로 '최고'라고 할 집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굳이 한 집만 꼽아 본다면 어디일까?

미국서 두번 째로 맛있는 집

#. 지난해 방송했던 tvN의 인기프로 '알쓸신잡2' 출연진들이 목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저마다 좋아하는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데 박학다식의 대명사인 유시민 작가가 일부러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순댓국집이었다.

유시민은 그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는데 "지구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순댓국집을 모두 다 가 본 건 아니니까 제일 맛있다고는 말 못하지만, 어딘가 이것보다 더 맛있는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구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 집은 그의 인생 최고 순댓국집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걸 보면서 나름 순댓국 좋아하는 나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순댓국 집이 있다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슬그머니 '아바이 왕순대'집이 떠올랐다. LA에 있는 여러 순댓국집들도 나름 다 괜찮지만 그래도 내 입맛에는 제일 맞았다는 말이었다.

사실 위치나 인테리어 등은 하나도 내세울 게 없다. 홀 종업원도 없이 무뚝뚝한 남자 사장님이 직접 서빙을 해 주는 지극히 '동포스러운' 식당이다. 하지만 순댓국(이집은 이름이 순대탕이다)을 마주해 보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진다.

우선 식탁에 옮겨져서도 한참을 혼자 끓고 있는 뚝배기와 앞이 안보일 정도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하얀 김부터 "괜찮겠는데"라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이어 들깨와 다대기, 새우젓 등으로 간을 맞추고 휘휘 저어 한 숟가락 국물을 떠 먹어보면 "오호, 이 맛은!"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실 모든 '탕'은 국물맛이 좌우하는데 이집 순대탕은 오랜 시간 달이고 삶은 티가 그대로 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간혹 유명하다는 집도 건더기와 따로 놀면서 인스턴트 라면 국물같은 얕은 맛을 내는 곳도 있는데 그런 집에 비하면 이곳은 뜨거운데 시원하고, 진한데도 깔끔해서 순댓국 국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숟가락 뜰 때마다 몇 점씩 꼭 따라 올라올 정도로 들어있는 고기도 푸짐하다. 흐물거릴 정도로 녹아있는 우거지는 돼지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함께 나오는 깍두기도 아싹한 식감이 입맛을 돋우고 무채에 버무린 가자미 식혜도 별미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젠 나도 '지구에서'는 아니어도 '미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순댓국집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순대, 얼마나 아시나요

1. 순대국일까 순댓국일까

많은 식당들이 순대국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정답은 순댓국이다. 한국 국립국어원 규정에 따르면 '재료+국'일 때는 사이시옷을 넣는 게 맞다. 그래서 순댓국과 마찬가지로 김치국은 김칫국, 북어국은 북엇국으로 적어야 한다. 반면 '재료+국밥' 형식일 때는 사이시옷을 넣지 않는다. 순댓국밥이 아니라 순대국밥이고 마찬가지로 그냥 돼지국밥, 소머리국밥으로 적어야 한다. 한글 표기 참 어렵다.

2. 순대의 기원

순대는 북방 유목민족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6세기 중국서 편찬된 '제민요술'에 양고기를 이용한 순대가 나오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고기 내장, 부산물 고기 등을 이용해 순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한반도에는 13세기 무렵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본다. 북방 유목민족인 몽골사람들이 제주도에 머물며 돼지와 말을 기르고 그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서양의 소시지도 몽골군이 유럽을 침공하면서 전해진 '유럽판 순대'다.

3. 순대의 어원

순대라는 말은 순우리말 같지만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휴머니시트, 2013)에 보면 순대의 한자어는 창자 장, 자루 대인 '장대(腸袋)'다. 여기서 대는 부대자루 할 때의 대(袋)이며 순대의 '대'는 여기서 왔을 개연성이 크다. 일종의 자루같은 것에 담아낸 음식을 통칭해 순대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은 어디서 왔을까. 이런 저런 설이 많지만 명확하진 않다. 만주어 순타(sunta)에서 순대가 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4. 순대의 종류

순대의 외피 재료는 돼지나 소의 내장이다. 요즘은 셀룰로스같은 인공물도 많이 쓴다. 대창(막창)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소창을 주로 이용하는데 그 속에 곡물, 채소, 고기, 피 등을 넣고 찌면 순대가 된다. 명태나 오징어 몸체를 이용한 명태순대도 있다.

보통 순대 하면 돼지순대를 말하지만 내용물에 따라 찹쌀순대, 피순대, 아바이순대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또 함경도 순대, 개성 순대, 병천 순대 등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5. 아바이순대

한반도의 순대는 크게 북방형과 남방형으로 나뉜다. 북방형은 함경도나 강원도 북부에서 만들어지는 아바이순대가 대표선수다.

보통 순대는 돼지 소창으로 만드는데 반해 아바이순대는 대창으로 만든다. 한 마리에 50cm~1m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그 속에 찹쌀, 두부, 숙주, 양배추 등을 넣어 쪄낸다. 그만큼 귀하고 크기도 커서 '왕순대'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6·25 당시 실향민들이 강원도 속초 일대로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형은 전라도나 제주도의 피순대다. 돼지 창자 속에 채소나 곡물 대신 피를 위주로 넣어 선지맛이 강하다. 몽골군이 전한 순대도 이와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맛이 독특해 호불호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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