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쉿, 음악 없이 소곤소곤…'적요'를 팝니다

휴식 원할땐 음악, 말소리도 소음
테이블 간격 띄우고, 나란히 앉도록
자갈·나무로 꾸민 실내 정원도 들여

너른 창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실내 배경음악을 틀지않는다. 덕분에 찻잔에 커피 따르는 맑은 소리까지 들린다. 임현동 기자

너른 창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앤트러사이트 서교'에선 실내 배경음악을 틀지않는다. 덕분에 찻잔에 커피 따르는 맑은 소리까지 들린다. 임현동 기자

"사진을 담는 소리와 커져가는 말소리는 삼가주세요."

1인석 위주, 실내 정원 등 사색을 위한 까페 공간이 뜨고 있다. [사진 대충유원지]

1인석 위주, 실내 정원 등 사색을 위한 까페 공간이 뜨고 있다. [사진 대충유원지]

도서관이 아니다. 카페에 쓰여 있는 안내 문구다. 서울 서교동 '앤트러사이트 서교'에 들어서면 여느 카페와는 다른 공기가 읽힌다. 배경음악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기에 산사처럼 적막하진 않다. 다만 점심시간 이후의 카페임에도 적당한 정도의 말소리만 공간을 울린다.

이 공간을 차분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無) 음악'만은 아니다. 주택을 개조한 이곳은 건물 어디에서나 앞마당의 너른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큰 창이 나 있다. 앤트러사이트 김평래 대표는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큰 창을 내고, 매일 다른 자연의 소리를 담고자 했다"며 "적적하고 고요하다는 의미의 단어 '적요'를 공간 스토리텔링의 테마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대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는 덕에 커피를 내릴 때마다 거슬리는 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공간에 여백도 많다. 테이블과 의자를 빽빽하게 두는 대신, 긴 바 형태의 테이블 위주로 구성해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인왕산 능선이 펼쳐진 창밖 풍경이 인상적인 서울 누하동 카페 '대충유원지' 역시 바 형태의 테이블 구성으로 조용한 공간을 만들었다. 서로를 마주보는 대신 나란히 앉아 창밖 인왕산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실내에선 차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나직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서울 옥인동의 찻집 '이이엄' 역시 조용한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찾는 장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호젓함이 느껴진다. 지난해 10월 문을 열 때 이곳 문 앞에는 '사진 촬영을 지양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지금은 조용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이 안내문을 뗐다. 이곳에선 차를 주문하면 1인용으로 세팅된 차 도구를 낸다. 차 맛을 오롯이 즐기며 사색에 잠겨보라는 주인의 의도다. 주명희 대표는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색의 여유를 주고 싶다"며 "차를 우리고 향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휴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조용하고 정적인 공간의 카페가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 특유의 지나친 소음으로부터 탈피해 호감을 갖는 이들이 많다. 사진 촬영도 마음대로 못하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게 눈치 보이지만 기꺼이 이런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신당동 카페 '오프셋(offset)'은 이름처럼 '일상으로부터의 격리'를 추구한다. SNS 계정에는 "외부와의 간격을 두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과도한 사진 촬영은 자제하고, 주말에는 노트북 사용이 제한되며, 외투 등 부피가 큰 짐은 입구 캐비닛에 보관해 달라"는 당부가 쓰여있다. 공간이 협소한 데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협조해달라는 설명이다. 여느 카페와 다른 요구조건에도 이곳에 들르는 이들은 "복잡한 마음이 비워졌다"며 후기를 남긴다.

지난 22일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20대.30대.40대 각 500명씩 '카페 이용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매력적인 카페로 커피 맛(30.2%)을 제외하면 공간이 멋진 카페(18.2%), 편안한 카페(21.6%)가 꼽혔다. '공간 비즈니스'이자 '휴식 비즈니스'로 카페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초연결사회, 번아웃 시대에 휴식처를 찾는 현대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카페가 자기만의 휴식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공간들의 특징은 실내 인테리어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유도, 설계했다는 데 있다. 브랜딩 전문 기업 필라멘트앤코의 최원석 대표는 "좌석을 많이 넣지 않고, 음악도 들릴 듯 말듯 잔잔하게 틀며, 사람들이 마주 보지 않고 한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요소들이 공간 분위기를 정적 컨셉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실내에 작은 정원을 구성하는 것도 특징이다. 화분.화병 정도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흙과 자갈을 깔고 정원을 만들어 식물을 심거나 오브제를 두는 등의 과감한 시도가 눈에 띈다. 화분에 담긴 식물이 싱그러운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준다면, 인공적으로 가꾸어 놓은 실내 정원은 하나의 작품처럼 관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서울 혜화동 복합문화공간 '어쩌다 산책' 역시 실내 정원을 조성해 정적인 분위기를 냈다. '어쩌다 주식회사' 김수진 프로젝트 디렉터는 "지하에 위치한 공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실내 정원을 만들었다"며 "정원 앞에는 평상을, 반대편에는 흑경을 놓아 손님들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스튜디오 '아트먼트 뎁'의 김미재 대표는 "잘 다듬어진 자연은 실내로 들이면 그 자체가 사색과 명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자 할 때 활용하기 좋다"고 했다. 정원 대신 더 많은 테이블과 의자를 놓을 수도 있지만, 이를 포기하고 공간에 여백을 주면 보다 정적인 느낌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 신사동의 '펠트커피'도 바 형태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나란히 앉아 건물 외부의 정원과 공중에 떠 있는 나무를 바라보도록 설계했다.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차분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요즘 카페가 진화하는 방향이다.


유지연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