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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일탈의 대가

아들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어느 날 숙제를 다 마쳤다며 부엌으로 와서 하는 말이,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한다. 난 조금 놀랐지만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한 숨까지 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너무 바빠서 놀 시간이 없다고 7살 인생이 고달프다는 이야기다. 난 웃음이 났지만 정색하고 상담자의 자세로 이야기 했다. 태어난 이상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그래야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아빠와 엄마도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고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학생이 공부가 하기 싫으면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아들은 눈을 빛내며 일을 하겠노라고, 학교를 더 이상 가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일을 하면 집에서 살고 밥도 먹고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난 너무 진지한 아들의 질문에 당연히 일을 하면 이 집에서 아들로 살 권리가 있다고 약속 했다. 아들은 신이 나서 학교는 가지 않고 일을 하겠다며 오동통한 입술로 말을 한다. 난 너무 귀여워서 뽀뽀라도 하고 싶었지만 너의 선택을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빠 오시기 전 저녁식사 때까지 거실의 유리창을 닦아야 한다고 했더니 아들이 거실을 한참 보더니 너무 많아서 저녁식사 전까지는 어렵겠다고 한다. 난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은 낑낑거리면 윈덱스를 들고 칙칙 뿌리고 페이퍼 타올로 닦아내며 딱 자기 키 만큼씩 유리창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빠가 들어와도 아들은 너무 열중해서 송글 송글 이마의 땀도 의식 못하고 단풍잎 같은 손을 움직이며 열심히 일을 한다. 내게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저녁 식탁에서 "학교를 그만 두기로 했다며 열심히 일하면 되니까 열심히 일해" 라고 아들에게 말 하자 아들은 "그런데 일은 쉬지 않고 해야 해요? 많이 힘들어요" 라며 풀 죽은 목소리로 오물오물 이야기 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걸 간신히 참으며 난 아들에게 "하루의 양이 있어, 그건 다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거지" 라고 말했다.



저녁이 끝나고 난 설거지를 하고 아들은 유리창에 매달려 여전히 윈덱스를 칙칙 뿌리며 창을 닦고 잠을 자러 방으로 가는 9시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잘 시간이라고 말을 하자 욕실에 들어가 치카치카 이를 닦는 아들의 모습은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인생의 쓴맛을 본 패잔병의 심각한 표정이다.

조금 후에 굿나잇 인사를 하러 우리 방에 들어와서는 역시 한숨을 쉬며 할 말이 있단다. 말해보라니까 자기가 잘 못 생각 한 거 같단다. 공부 하는 게 훨씬 쉽겠다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겠단다. 난 아들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엄마는 네가 집안일을 도와줘서 참 좋다고 생각 했는데 아쉽지만 너의 결정을 인정하겠다고 오늘 수고 많았으니 잘 자"라고 했다. 아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남편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안 나게 심각한 아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마구 웃었다.

밤이 깊어 살그머니 아들의 방에 가보니 오후 한나절의 노동으로 인사불성이 되어 우리가 뽀뽀를 하고 안아주어도 모르고 골아 떨어져 있었다.

아들은 이렇게 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 제일 쉽다는 걸 일찍이 7세에 터득하고 그 이후로 수 십 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 부부에게 공부하기 싫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겪어 본 반나절의 일탈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오동통한 뺨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한숨짓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박향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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