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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슬픔은 병이 된다. 오래 참으면 고질병이 된다.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세월이 멍울을 만든다. 고통은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하고 상처는 아물어도 흔적을 남긴다.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개로 지워도 하얀 공책에 흔적이 남는 것처럼. 어릴 적 손때 묻은 고무지우개로 열심히 지우다 보면 공책에 더 형편없이 흠이 생겼다.

감추고 숨기고 아닌 척 하며 살아도 숨겨진 마음의 병은 육신을 갉아먹는다.

어릴 적에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탓다. 어머니가 장에 가시면 방 문 걸고 이불 뒤집어 쓰고 엄마를 기다렸다. 철조망 달고 깨진 맥주병을 꽂아 만든 튼튼한 담장이 버티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두려웠을까. 집안에는 도적이 탐 낼 물건도 없었다. 금은보화는 커녕 고물 라디오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래도 도적이 훌쩍 담 뛰어넘어 날 죽일까 봐 무섭고 공포 영화에서 본 머리 푼 여자 귀신이 천장에서 피 흘리며 칼 물고 나타날까 봐 벌벌 떨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캄캄한 밤중 뒷켠 멀리 있는 화장실에 갈 때면 오빠가 불침범을 섰는데 가끔은 불씨 남은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귀신처럼 나타나 나를 놀라 자빠지게 하곤 했다.



이 끝간 데 없는 알지못할 두려움은 왜 생겨 났을까? 그래도 엄마가 장에서 돌아와 30촉짜리 흐릿한 전등을 켜면 세상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한 순간에 사라졌다. 사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어떤 물체가 아니라 어머니 없이 혼자 남는 두려움인 지 모른다. 이젠 혼자 있어도 헛것을 떠 올리며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무섭다. 남은 시간 사는 게 두렵고 죽는 게 무섭다. 가진 것들 잃을 까 걱정되고, 가족 친지 친구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것이 힘들다. 병원과 장례식장 가는 게 귀찮고, 휠체어 타거나 산소 호흡기 달고 장 보는 노인들 보기가 싫다. 거울 속 눈 밑에 쳐진 내 얼굴 보기가 밉고, 돋보기 껴야 잘 보이는 키 보드가 짜증난다. 쏜 살 같이 지나가는 시간이 끔찍하고, 금방 넘긴 달력을 또 넘길 땐 유수 같은 세월에 절망하며 위기감을 느낀다. '끝은 끝이 아니다'가 아니고 종말은 언제가 앞을 막는 두려움의 실체로 다가올 것이므로.

그래도 머리 흔들며 열심히 살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들고 죽는 게 두려워도 죽자 사자 애걸복걸 심통 안 부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기로 한다. 안달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궁상 떨지 않고, 못 이룬 것에 연연 하지 않고, 등 돌리는 사람 잊혀진 사람들은 그냥 잊어 버리고, 자식들에겐 바라지도 서운해 하지도 말고 그냥 사랑만 주고, 먼저 떠나 간 사람들 위해 물망초 한 다발 가슴에 심고 살고.

상큼한 청포도 입에 물고 태양 볕에 영글 생각을 한다. 다음 달 85세 생신인데도 금방 딴 오이처럼 싱싱한 오삼촌께 "왜 사세요?"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 살면 되나요?"라고 배울 생각이다. 불굴의 정신과 품위로 한 마리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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