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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말수가 적어지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8/30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8/29 16:33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즐거운 일이 훨씬 많고, 평범한 일상이 훨씬 많겠지만 우리는 고통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다른 일이 재미있어도 신경 쓰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다양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끊기도 합니다.

말은 그야말로 소통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힘이 들면 말수가 줄어듭니다. 말수는 말 그대로 말의 수입니다. 즉 대화의 양이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이때가 위험한 순간입니다. 사람과 세상과 소통을 끊겠다는 의미죠. 일부러 말수를 줄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절로 말수가 줄어듭니다. 괴로움의 표시일 겁니다. 갑자기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잘 살펴봐야 할 겁니다.

말수가 줄어들었다는 건 모든 신경이 한 곳으로 쏠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신경이 안으로 집중되니 소화도 안 될 겁니다. 위(胃)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장(腸)도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화장실에 가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자주 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죠.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도대체 잠도 잘 못 이룹니다. 자꾸 중간에 깨거나 머리가 맑지 않은 상태가 계속됩니다. 멍한 괴로움이죠.

내가 말을 하면 다른 사람도 괴로울 거라는 생각에 말수를 일부로 줄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슬픔도 괴로움도 나누어야 줄어듭니다. 내 괴로움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괴로운 심정도 헤아려주어야 합니다. 말수가 적어지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까요? 힘들수록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특히 바깥일을 집에 와서 이야기하는 게 예전에는 금기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대화가 사라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였습니다. 대화의 공통 소재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저 몇 마디 말만 나누다가 잠이 들 겁니다. 부부 간에도 공통의 이야기 소재가 많아야 합니다. 친구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공통의 소재가 많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말수를 조금씩 늘려볼 필요도 있습니다. 즐거운 대화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는 동물, 인간이니까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가 객관화되기도 합니다. 말의 고마움이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리가 되기도 합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분노나 괴로움이나 슬픔도 이제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말수가 적어졌을 때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를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이 말수가 적어졌다면 살펴봐주어야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종종은 손을 못 내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건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즐기고, 혼자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훌륭한 겁니다. 혼자서 지나온 일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다면 말수가 자연스럽게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게 힘들어 말수가 적어졌다면, 자꾸 작아지고 있다면 위험한 겁니다. 오늘 이 글은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 스스로에게 보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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