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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퉁퉁 부르튼 입술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 (20)

롯지로 돌아 오니 바로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계란과 북어국이다. 원래 오전 7시30분에 출발 예정이었는데 모두들 긴장의 끈을 놓았는지 급할게 없다. 한 시간 후인 8시30분이 되서야 각 조별로 모여 인원을 점검한다. 이제 내려가는 길은 강행군이다. 팻말 앞에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다. 20명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 후 웃고 또 웃고 포옹한다. 우리 모두 해낸 것이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지나니 오전 10시가 되어 간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이 햇살로 반짝이는 빙산은 무엇으로도 표현이 될 수 없는 광경이다. 올라 갈 때는 긴장도 하고 날도 어둑 어둑해서 자세히 못 봤던 풍경을 이리 저리 둘러 보며 즐기고 있다.

한참을 내려 왔나 보다. 뒤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린다. BS가 무릎을 심하게 다쳐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 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등정한 후 하산하게 되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제일 많이 걱정 했는데 그래도 중간에는 나보다 앞서서 고군분투하던 그녀가 아니던가. 함께 했던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보낸다. 뉴욕에서 떠날 때 에베레스트를 갔다가 모두 헬리콥터를 타고 하산했다던 YK 일행이 문득 생각난다. 그의 조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기라고. YK 일행은 그래도 모두 5000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등정하고 내려 왔다고 한다. 점심은 도반에서 먹기로 했는데 정확하게 정오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모두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말리고 있다. 입맛이 없지만 짜장밥이라서 한 술 뜨고는 곧바로 출발한다. 갈길이 먼 하루다.

뱀부에 도착하니 오후 1시44분이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약을 꺼내 먹고는 고산증에 대비했다. 언제 도질 지 모르는 증세가 산행 내내 피곤하게 한다. 걷고 또 걷는다. 촘롱이 앞에 보이는 히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이다. 이제 계곡까지 내려가 다른 산을 타고 올라 가면 촘롱이다. 계단이 많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원래 산이라는 것이 올라 갈 때는 힘도 있고 목표가 있어서 악을 쓰고 올라 가지만 하산 길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힘이 배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고도 오를 때보다 내려 갈 때 더 많이 생긴다. 도착하니 오후 6시다. 이틀 만에 내려가려니 강행군을 할 수 밖에 없다. 이층에 지정된 방에 들어가니 침대 두개가 바짝 붙어 있어 걷기도 힘들 만큼 좁다. 배가 너무 고파 양갱으로 대충 허기를 때우고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저녁에는 ES를 비롯한 2명의 산우가 특별히 도네이션하는 양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양고기를 먹지 못하는 CS는 안 먹겠다고 하고는 잠들어 일어날 생각도 안하고 나 역시 입맛이 없어 못 먹고는 비실 비실 하고 있는데 대장 SS가 빨리 CS를 깨워 데리고 내려 오란다. 닭백숙을 특별 주문했다고 한다. CS가 며칠 전부터 향신료 냄새 때문에 거의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대장 SS가 특별히 신경쓴 것 같다. 덕분에 나도 토종닭으로 포식하는 날이다. 허겁 지겁 둘이서 맛있게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편치가 않다. 모두 피곤해서인지 식당에는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5월 2일 오전 5시, 혀 전체에 침이 돋아 있고 입술이 퉁퉁 부르터 고생은 혼자 다 한 것 같다. 감자국에 밥 말아 대충 먹고는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 산행로에는 눈의 흔적은 없다. 내리 쬐는 강렬한 햇빛은 한 여름에 걷는 여느 산행길과 다를 바가 없다. 정오가 조금 지나 버스 정류장 근처 롯지에 도착할 때 즈음해서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터벅 터벅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인 듯 하다. 식당에 도착해서 의자에 몸을 맡기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 점심으로 비빔국수가 나왔지만 거의 먹지 못했다. 입술이 점점 더 터지고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혀침이 많이 돋아 있다.




정동협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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