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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한국보다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

한국보다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에 조선땅을 찾아와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 앞에 붙는 수식어다.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운 것은 물론 남존여비, 사농공상 같은 수 천년 전통과 인습의 망국기조를 허물고 교육과 신앙을 통해 인간의 숭고함과 누려야 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계몽시킨 고마운 사람들이다.

구한말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앞의 두 분이 남성위주의 선교와 교육에 치중하였다면 다음의 두 분은 차별과 억압 속에 살았던 이름조차 없던 조선여인들 의식을 깨우친 분들이라 할 수 있다.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턴과 배화학당을 창립한 캠벨 선교사다. 메리 스크랜턴(Mary Scranton 1832~1909)은 40세에 남편을 사별하고 53세 되던 해인 1885년 5월 의사인 아들 윌리암과 함께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여선교사이자 모자 선교자사다.

스크랜턴 여사가 조선에 뿌린 업적은 많으나 가장 빛난 것은 아마 이화학당 설립일 것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학교교육은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열악한 환경과 곱지 않는 시각 속에 시작한 학교설립은 많은 난간에 부딪힌다. 그러나 1886년 5월 31일 권세 있는 집안의 어느 소실이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관이 되고 싶다며 찾아오면서 실마리가 풀린다. 이렇게 단 한 명의 미약한 시작은 이듬해 200평 규모의 기와집 학교 준공과 함께 학생도 7명으로 늘어나는 창대함의 기류를 보인다. 이렇게 25년동안 험난한 조선선교사역을 감당한 스크랜턴은 1909년 77세의 일기로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텍사스주에서 감리교 목사의 딸로 태어난 죠세핀 캠벨(Josephin Campbell 1853~1920)은 27세가 되던 해 남편을 사별하고 두 아들마저 병으로 잃는 슬픔을 경험한다. 그녀는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34세 되던 1887년 남감리교단 파송 중국선교사로 상하이, 슈져우 등에서 10년동안 다양한 선교활동을 펼친다. 임기가 만료된 1897년 그녀는 중국인 양녀 여도하와 함께 제물포항에 입국한다. 조선선교사로 다시 지원한 것이다. 캠벨의 선교사역은 역동적이었고 빨랐다. 입국 이듬해인 1898년 10월 2일 고간동, 지금의 내자동에 배화학당의 시초가 된 캐롤라 학당을 개설하였으니 말이다. 그 뒤 1900년 4월 잣골교회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자교교회의 모태가 된 '루이스 워커 기념예배당'을 헌당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사고와 향토병이었다. 병치료와 안식년을 겸해 1918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돌아올 건강이 아니었으나 기꺼이 조선에 귀임했고 4개월 뒤인 1920년 11월 26일 향년 67세의 일기로 스크랜턴이 묻힌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지에 안장된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 130년전 두 여선교사들이 발로 전한 좋은 소식은 이제 회귀한 연어처럼 미국 속의 한인여선교회가 바통을 이어 받아 또 다른 조선을 찾아 복음 전파의 아름다운 발이되고 있다.

오늘 아침(5월 11일) 대뉴저지 연합감리교회 한인 여선교회 연합회가 주관하는 17번째 'Walk-A-Thon'이 조지워싱턴 대교 아래 허드슨 강변을 잇는 3마일 코스를 걸으며 기금모금운동을 펼친다고 듣는다. 그리고 모은 기금전액은 미국 내 교도소선교를 위해 쓰여진다고 한다. 그리고 희망한단다. 머지 않아 몽골땅에 빛이 심겨지고 열매들이 자라 완숙을 선포한 뒤 다른 흑암지를 밝히는 아름다운 발이 되기를 말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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