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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인향만리(人香萬里)

인향만리(人香萬里)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만리를 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서 체취가 나지, 무슨 향기가 나겠는가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 향기란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를 뜻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느 작가는 인향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곁을 떠날 즈음 그 사람만의 향기, 인향이밀려온다”고 했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크니, 그에 대한 그리움도 크다고 한 말입니다.

저는 인향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타인을 스스로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향기라고 하느냐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과연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특별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쉽게 타인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며, 얼마나 자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모두 시대를 탓하고, 나이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지요. 이젠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게 특별해진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서는. 특별한 마음, 즉 인향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향기는 함께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게 합니다. 특별한 존재이고 존중받는 사람으로 느끼게 합니다. 저는 그런 향기를 간직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난 일입니다. 꽤 쌀쌀했던 봄날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박 변호사와 그의 선배님은 잠깐 어느 식당에 들렀지요. 식사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시 인사를 해야 했을 어르신들이 계시던 곳이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다 입구에 놓인 테이블에서 한 손님의 수저를 툭 쳤습니다. 박 변호사 가방에 걸린 듯했습니다. 쨍그랑하고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박 변호사가 돌아서 보니, 그의 선배님이 이미 바닥에서 숟가락을 집어 종업원에게 건네시고 계셨습니다. 종업원이 숟가락을 받아 부엌으로 들어갔고, 박 변호사는 그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시던 손님에게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나 그 선배님은 박 변호사를 따라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테이블에 앉으신 어르신과 나누시며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박 변호사는 슬쩍 그 선배의 소매를 잡으며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선배께서는 박 변호사의 손을 잡으며 “아직 새 수저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숟가락이 손님 테이블에 전달되자 선배님께서는 박 변호사를 대신해 죄송한 마음을 다시 전하고 그 자리를 뜨셨습니다.

오래전에 이 이야기를 박 변호사에게 전해 듣고 저는 그분의 따뜻한 마음,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둥근 달처럼 그 향기는 풍성하고 커다랬습니다. 결코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배려가, 짙고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차갑고 어두운 겨울 저녁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어우르는 듯, 이기적이고 차가웠던 나의 마음도 따뜻하고 부드럽게 했습니다. 그 선배님의 향기는 만 리를 넘어 이곳 미국까지 나는 듯했습니다. 잔잔하게, 그렇지만 오래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세상에 저 선배님 같은 향기로운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심한 배려와 사람을 존중하며,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그런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저도 더불어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강인숙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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