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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운 좋은 사람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6/0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8/06/01 17:07

이수임(화가·맨해튼)

"넌 운을 타고 난 아이야. 네가 금전이 필요할 때면 따라오거든. 그러나 조심해라. 곧 코너에서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라면서 아버지가 이따금 들려준 말씀이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늘 긍정적인 삶을 살며 조심해서인지 크게 굴곡진 어려움은 드물었던 것 같다.

어머 구두가! 아이가 프롬에 간다고 구두를 사 달라고 했는데 산책길에 새 신발이 고이 곽 안에 모셔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플한 검정 슈즈다. "신어봐." "어디서 났어요?" 슬쩍 넘기려 했으나 눈치챘나 보다. "길에서 주었지요?" "당연하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지 않고 한동안 무슨 수가 없을까? 하고 기다린다. 그러면 가끔 아침 산책길에서 해결된다. 젊은이들이 화가의 꿈을 안고 타 주에서 왔다가 포기하고 떠나는 동네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썰미 덕분에 품질, 세련됨이 내 돈 주고 사는 것보다 훨씬 좋다. 상자 안에 깨끗이 내놓은 상품에 대해 구글에 서치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요런 정도의 운은 미미한 것이다.

하루는 산책길에서 어제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집을 판다는 사인이 떡 붙은 삼 층 건물을 봤다. 길목도 좋고 건물도 크고 단단해 보였다. 돌아오자마자 브로커에게 전화 걸어 가격을 물어봤다. 귀를 의심했다. 예상 가격보다 너무너무 좋기 때문이다. 일단 만나기로 해 놓고 어찌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당장 자금 마련하기는 틀린 노릇이다. 지인 두 사람에게 전화해서 함께 사서 한 층씩 쓰자고 했다. 가격을 듣더니 달려왔다. 그러나 며칠 후 지인 중 한 명이 자기 혼자 하겠다며 복덕방과 이미 말이 오갔다는 것이 아닌가! 멍청히 쳐다보다 입을 다물었다. 다른 한 지인은 그럴 수 있냐며 섭섭해했다.

건물 주인이 된 지인 부부는 우리만 따라다니면 좋은 일이 생긴다며 우리 부부에게 잘했다. 음식 잘하는 그의 부인이 초대도 하고 멋쟁이 그녀가 입다가 싫증 난 옷을 산더미처럼 주곤 했다. 다시는 산책길에서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날 그 부부와 우리 부부가 산책길에서 만났다. 반가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그런데 부인이 갑자기 쌩하며 얼굴을 돌리더니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닌가! 내 남편은 그녀를 부르며 쫓아가고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그녀 남편을 쳐다봤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아직도 모르셨냐?'는 표정으로 멋쩍어했다. 아차 싶었다.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은 서울 깍쟁이인 나 때문에 잠재해 있던 증세가?

그렇지 않아도 살 만큼 산 그 동네를 떠나려 했었다. 잘 됐구나 싶었다. 맨해튼으로 이사했다. 허드슨강 변 리버사이드 공원을 조용히 산책하는 나는 정말 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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