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현철수 속병클리닉] 미국에는 까스 활명수 같은 것 없소?

습관적인 소화제 복용, 심각한 질환 발견 늦기도

췌장 기능 정상인 사람, 소화 효소제 무용지물

소화기 기능 이상 없으면, 미국에선 처방되지 않아

나는 번개 밥이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필자가 뉴욕 지역의 한인 사회에 병원을 열고 한국인 환자들을 한창 진료하기 시작했을 때다. 하루는 연세가 지긋한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이유인즉 최근 미국에 방문차 왔는데 소화가 잘 안 돼 불편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까지 팔십 평생을 살면서 소화 불량이 이렇게 오래간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식사를 한 후 체기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식사 시간이 별로 반갑지 않을 정도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에도 좋은 소화제가 있을 터이니 하나 처방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함께 온 부인은 "이이는 밥을 너무 빨리 먹어서 그래요. 그러니 소화가 제대로 될 리 있겠어요?" 하고 거들었다. "아, 소나기밥을 드시는군요" 하고 나는 당시 진료를 받던 다른 환자가 한 말을 인용하며 아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노인의 말이 걸작이었다. "소나기밥이면 괜찮게. 나는 번개 밥이오!"라고 은근히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밥 두 그릇 정도는 몇 분 안에 해치울 정도로 빨리 식사를 한다는 표현이었다. 늘 이렇게 생활해 왔는데 이제는 밥 한 그릇을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속에 얹혀 안 내려간다는 불평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훼스탈'이라도 먹으면 될 텐데 미국에는 어떤 소화제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노인은 1주일 후에 결국 내시경을 포함한 정밀 검진을 했고 그 결과 아스피린 복용과 관련된 양성 위궤양으로 판단이 내려졌다. 필요한 치료를 받고 증상은 이내 사라지게 되었다.





속만 불편하면 무조건 소화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개업한 필자는 '좋은 미국산 소화제'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자주 접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한국같이 '훼스탈' '까스 활명수' '속청' 같은 소화제가 시중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한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소화 효소제나 위장 운동을 촉진시키는 '건위제'들을 별로 처방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기껏해야 제산제나 위산 분비 억제제를 처방할 뿐이다. 특히 위장내과 전문의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소화 기관의 특정 일부를 수술 받았거나 아니면 위, 간과 췌장의 작용이 미진하여 꼭 약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효소제나 건위제를 권하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화제에 친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우리 한국인들보다 더 소화제를 많이 복용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약품 소비량 통계에 의하면 매일 1000명중 120~400명 정도가 소화제를 찾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소화제란, 음식물을 먹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물이 위에 지체되어 더부룩하고, 부대끼는 듯한 증세가 있을 때 필요로 하는 약이다. 지금까지 소화제는 주로 소화가 안 될 때는 물론이거니와 과식 또는 음주하기 전에 미리 챙기는 약으로 인식되어 왔다. 물론 과거에 비해 식생활의 변화와 식이 요법 등으로 소화제 복용이 많이 줄어드는 듯하나, 아직까지 무분별하게 많은 종류의 소화제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소화제를 식욕이 감퇴하거나 가스 제거 등 아무튼 배가 불편하면 복용하는 약으로 알고 있기까지 하다. 이렇게 소화제가 우리 주변에 일상화되어서 많은 경우 환자는 증상의 원인을 확실히 분석해 보기도 전에 소화제로 자가 처방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심각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분과 효능 알기

한국의 소화제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성분은 소화 효소제로 이루어져 있다. 효소제는 주로 췌장에서 분비되는 아밀라아제, 리파아제, 프로테아제 등으로, 단백질과 지방질들을 분해하는 작용을 한다. 물론 췌장의 기능이 정상이어서 이러한 효소제가 정상으로 분비되는 사람들에게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러한 효소제 외에도 소화제에는 제산제, 위 운동 촉진제, 가스 제거제 등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 성분들이 탄소화 물질, 지방질, 단백질, 그리고 섬유질 등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위 안에 음식물이 오래 머물러 있을 때 위산 분비가 강화될 수 있는데, 이러한 위산의 영향으로 더욱 더 불편해질 때 제산제나 위산 분비 억제제를 이용해 산성을 중화시킬 수 있다. 또한 건위제를 통해 무력한 위의 운동성을 촉진시키고, 가스를 제거하는 성분들은 일시적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습관적 복용의 위험성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습관적인 소화제 복용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로, 알레르기 반응을 비롯해 불필요한 복용은 습관성 기질을 길러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생활습관병의 주요 원인인 그릇된 식사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고치는 예방 의식을 갖지 못하고, 늘 약에 의존하여 잘못된 습관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은 회식이 있으니까 소화제가 필요하겠지?"라며 미리 예방(?)하는 것은 참된 예방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화제를 남용하지 말라는 말이지, 아예 복용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소화제 한두 종류를 비상용으로 챙겨 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속적인 약의 복용이 심각한 질환의 적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여 자칫하면 질병의 발견 시기를 늦추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배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하며 아프고 식욕마저 줄어든다면, 이러한 증상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병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니, 통증이 없더라도 배 부위에서 느끼는 지속적인 불편함의 원인은 검진을 통해 파악해야 할 일이다. 단순한 소화 불량이려니 자가 진단 하여 동네 약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때에 따라서는 전문의에게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


현철수 박사=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생물리학을 전공하고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조지타운 의과대학병원에서 내과 레지던시 후 예일 대학병원에서 위장, 간내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고 많은 임상 활동과 연구 경력을 쌓았다. 로체스터 대학에서 생물리학 박사,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스토니브룩 뉴욕주립 의과대학과 코넬 의과대학에서 위장내과, 간내과 교수를 겸임했다. 재미 한인의사협회 회장, 세계한인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뉴저지주 의료감독위원회 위원이자 아시안 아메리칸 위암 테스크포스(Asian American Stomach Cancer Task Force)와 바이러스 간염 연구센터(Center for Viral Hepatitis)를 창설해 위암 및 간질환에 대한 캠페인과 나아가 문화, 인종적 격차에서 오는 글로벌 의료의 불균형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