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잠들지 않는 땅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흙길을 걸으며아침 이슬 곱게 묻은 풀 한 포기
어딘가에 피어있을 들꽃 한 송이라도 찾아
먼지 날리는 눈에 넣고 싶었다
검은 하늘에 난데없이 떠 있는 무지개처럼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녹물 흘러내리는 글씨
위태롭게 흔들리며
표정 잃은 사람들을 통과시킨다
새 땅 새 하늘로 뻗은 기름친 철로에
갈래머리 소녀들의 손에서 흘러내린 아이스크림
아직 달콤한데
선 채로 잠을자고 있는 스무살 청년의 부러진 날개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천장 사이에 끼어
아직 파닥거리는데
팔십년 두 눈 부릅뜨고 박제된 시간들이
투명한 유리관 속에서 포효한다
환한 불빛 아래
누룩으로 부풀린 빵을 뜯어 입에 넣는 사람들
둥근 식탁 위에 웃음이 빵처럼 부풀어 오르면
때 이른 별들이 내려와 피 뭍은군복 위에서 빛나고
오늘도 무사히 굴뚝을 통과한 사람들이
맞은편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눈먼 하늘과
심장을 빼앗긴 바람이 수천번 무릎을 꿇어도
떨리는 몸을 돌 틈 사이에 숨긴 저 꽃들은 아직
이 땅에 다시 피어나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한 역사는 병상에 누워
잔혹했던 시간의 봉인된 입술만 매만지고 있다
수만의 사람들의 문안을 받으며
* 수용소 입구에 걸려있는 나치의 구호
윤지영 / 시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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