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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방 안의 코끼리

데이는 태국과 일본 그리고 과테말라를 거쳐 한국으로 온 아프리카계 미국 청년이다. 사람들은 그를 ‘흑인’이라고 말한다. 2년째 서울에 살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하며 건실하게 삶을 일궈가고 있다. 그는 같은 피부색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겪는 고충을 돕는 일도 한다. 영어학원의 강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동료들의 경험을 보면서, 피부색 때문에 언제까지 이런 불평등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2012년 2월, 플로리다의 샌포드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다. 캔디를 사던 평범한 17세 소년 트래본 마틴은 동네를 순찰하던 조지 짐머만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커다란 파문이 일었지만, 조지 짐머만은 선량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몰렸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그를 지원하는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최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BLM(Black Lives Matter)’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팝이나 재즈 분야에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독보적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계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최근 50년 사이에 아시아 출신 연주자들의 비약적인 도약과 수적 증가가 뚜렷해지면서 위상과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이 분야는 백인 순혈주의가 강한 편이다.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흑인 음악가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폴란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던은 줄리어드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비올라 연주자이다. 지난가을,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인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오디션에서 우승한 조던은,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터티스 비올라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음악가로서 탄탄대로의 길이 열린 조던은 BLM 운동에 관해 ‘복잡한 사회문제’라고 말했다. 흑인들이 겪고 있는 부당함을 알아줘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을 뛰어넘는 사회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들이대는 냉혹한 잣대는, 자연스럽게 도전하고 시도하며 배워가도록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데 있다. 그래서 모든 리허설이나 연주는 물론, 평소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과 같은 외모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편안한 모습이 보이면 사람들의 불편한 바로 그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한 준비성이나 프로페셔널리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흑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엄연히 존재하는 이 문제를 방 안의 코끼리처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다. 흑인 연주자가 출연해 흑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도록 장을 열어 주는 식으로 이를 무마하려고 한다면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BLM 운동은 단순한 연대를 뛰어넘어, 그들과 인식을 같이하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언맨이 입었던 강철 옷을 입은 철면피가 되지 않더라도, 숨 쉬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조던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그들이 내딛는 먼 여정에 우리의 한 걸음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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