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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차라리 교만하고 말지

“미세스 리는 참 교만한 사람이야.” 옆자리에 앉아 떠들던 권사라는 여자가 나를 향해 뜬금없이 말했다. “교만? 저의 어떤 면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는 삶이 교만하다는 증거야. 당장에라도 교회 나가지.” “교회 가야만 하나님을 믿는 건가요?”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꿀꺽 삼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여~.”

오랜 이민 생활, 이런저런 역경 속에서도 항상 감사하며 기쁜 맘으로 살았다. 운 좋게도 사기꾼도 만나지 않았고 억울한 일도 크게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생각할수록 기분 언짢다.

나는 LA에 사는 1.5세, 손아랫동서를 무척 좋아한다. 착하다. 귀찮게 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 잘한다. 나는 동서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다가 아차 실수했다. “형님, 우리 시어머니와 아버지 상조회를 들었으면 하는데요?” 동서가 운을 뗐다. 난 상조회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착한 그녀가 하자니까 동의했다.

청구서를 받아보고 나는 어머니 몫을 낸다는 것을 알았다. 동서 몫인 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1993년부터 2016년 중순까지 23년 동안 단 하루도 늦지 않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상조회에 1만5000불을 완납했다. 그리고 매년 별도의 회비도 냈다. 상조회비를 내는 23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회칙이 계속 바뀌었다. 시작할 때는 20년 동안 1만4250달러를 완납하면 돌아가신 후 1만5000불을 주겠다고 했다. 회칙이 또 바뀌어 1만5000불 전액을 완납해도 1만4250불만 주겠다고 바뀌었다. 재정상 그렇게 됐다며 750불은 헌금 한 셈 치라는 것이 아닌가! 익스큐즈도 없이 헌금하면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교회 근처도 안 가는 나에게. 그 이후에도 회칙이 또 바뀌었다. 앞으로도 계속 바뀔 터인데 이러다가 재정이 곤란하다며 시어머니가 돌아가셔도 헌금한 셈 치라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죽음으로 향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끌어모아 상조회를 만들었으면 적어도 재정 전문가가 있었을 텐데? 주판 흔들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단 말인가! 23년 동안 그 액수를 땅에 묻어놨어도 원금을 찾을 수 있었다. 전문가도 아닌 나도 2007년부터 뱅가드 인덱스 펀드에 투자해서 자금을 불렸다. 내가 왜 상조회에 가입해서 27년 동안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인지? 나 자신을 탓하며 후회하고 또 했다. ‘점을 치러간 한 남자에게 점쟁이가 “점괘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단다. 동물원에만 가지 않으면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겠지 했던 남자가 어느 날 죽었다. 사자 조각상 밑에 앉아 졸다가 동상이 무너져서.’

나야말로 교회 나가지 않는다고 교만하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멀리했다. 그런데 동물원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음에도 화를 당해 죽듯이, 교회에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상조회의 계속 바뀌는 회칙에 끌려다니다 드디어는 깔려 눕게 생겼다. 차라리 교만하고 말지!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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