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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장애·비장애 초월한 감동은 가까운 곳에 있다

이노비는 공연으로 소외된 분들과 사랑과 희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연주 봉사를 함께할 재능 기부자도 모집하고 있다.

이노비는 공연으로 소외된 분들과 사랑과 희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연주 봉사를 함께할 재능 기부자도 모집하고 있다.

벌써 이노비와 함께한 지도 9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잊을 수 없는 많은 분을 만나고 함께 봉사하고 협업하고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가을이 되어 마음이 촉촉해져서 그런지 유난히 함께 눈물을 흘렸던 분들이 생각이 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한인 암 환자 모임의 어머님들

2011년 가을쯤, 이노비가 맨해튼에 오피스를 얻어 활동을 시작할 무렵 우연한 기회로 조인하게 되었다. 컴퓨터 몇 대가 달랑 있고 빛도 잘 들지 않는 몇 평 되지 않는 좁은 오피스에서 이노비 뉴스레터 이노진의 이름을 짓고, 혼자 밤늦게까지 만들고, 이노비의 튼튼한 기초를 세워주신 후원자 분들을 만나고, 아웃리치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나 하나 배워가며 비록 몸은 힘들지만, 하나 하나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기쁨으로 가득 찬 하루 하루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간 공연이 플러싱에 있는 한 교회에서 한인 암 환자 모임을 위한 음악회였다. 퀸즈 지역에 암 투병 중이신 분들과, 완치가 되었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힘쓰시고 있는 분들과 함께했다. 음악회 준비가 끝나고 공연이 시작해 관객 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그날 준비한 음악회는 클래식 음악회로 오보에와 클라리넷과 피아노 연주자 분들께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앉아 감상하시던 어머님 한 분이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울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평소 눈물이 많지 않은 내가 그분을 위로하며 같이 엉엉 울어버렸다. 그날 처음 뵙는 생판 남이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그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나의 마음까지 전해졌던 것 같다. 공연 후 많은 분들이 공연이 정말 좋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이 첫 번째 공연 이후로 ‘아, 이노비가 하는 일이 이런 일이고 정말 필요한 일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호스피스 병원의 한 환자

호스피스 병원은 더는 치료보다는 환자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드리는 게 목적인, 일반 병원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는 병원이다. 항상 이곳을 찾아가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하는데 하루는 어떤 환자분이 공연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는 눈물을 멈추시고 웃으시며 연주자들과 얘기를 나누시길래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았다.

알고 보니 그분은 공연 전날에 일반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으시고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신 분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 생각이 복잡하고 우울하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콘서트가 있다고 해서 내려와 보았는데 음악이 너무 좋고 아름다워 눈물이 흐르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많은 감정들이 분출되고 오히려 기쁨과 희망마저 느낄 수 있었다는 말을 해주셨다. 인생의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간에 우리가 기쁨과 희망을 주는 시간을 드릴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다.



한인 양로원의 어르신들

얼마 전에 있었던 두 번의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번은 뉴저지, 한 번은 플러싱에 있는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했는데 함께 했던 연주자 분들이 한마음으로 열심히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곡들을 선곡하고 준비해준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반응도 좋고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셨던 공연인 것 같다.

양로원에는 몸이 불편하시고 거동이 어려우시거나 기운이 없으시고 우울해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리신 분들도 많으신데 그 중 한 어르신이 전혀 거동도 못하시고 말씀도 전혀 못 하시는 분인데 우리가 준비한 동요를 함께 따라 부르시고 박수를 치시는 모습에 양로원 직원 분이 깜짝 놀라셨다. 한인 어르신들을 위해 한인 연주자들이 한국노래를 많이 준비했는데 함께 한 연주자 분들도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할머님 할아버님을 생각하며 눈물이 많이 났다고 한다.



호스피스병원 환자분의 딸

이노비는 환자분들을 위한 음악회뿐만 아니라 호스피스병원에서 환자 가족들을 위한 꽃꽂이(플라워힐링) 수업 시간을 제공해 드리고 있다. 환자 가족 분들은 병간호하는 와중에 잠시 짬을 내어 함께 꽃을 이용한 테라피를 받으며 직접 만든 꽃을 병실로 가져가서 환자분께 보여드리고 병실에 놔두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곧 보내야 하는 슬픔의 시간을 겪는 가족 분들께 너무도 중요한 시간이다. 실제로 웃을 일이라고는 없는 하루 하루에도 꽃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이 많다. 사람에게 실제로 힘이 되는 일은 이런 작은 아름다움과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이 다시 와 닿는다.

어느 날 플라워 클래스에 참여한 환자 가족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지난 몇 달 동안 플라워힐링클래스는 병원이라는 사막에서 나에게 오아시스와 같았어요. 엄마를 간병하는 시간 동안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죠. 매 클래스 후에 내가 만든 꽃을 병실에 있는 엄마에게 보여드리려고 가지고 들어갈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에요. 제가 수업마다 배운 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경험이었고 이제는 꽃을 꽂는 것에 자신감이 생겨 집에서도 매주 꽃을 꽂아놓는답니다.

엄마는 몸이 아프시기 전에 오랫동안 정원에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채소와 꽃을 많이 심으시고 가꾸셨어요. 요즘 정원에 있는 거라곤 장미 몇 송이뿐이랍니다. 캘버리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몸이 많이 아프셨는데도 가끔 집에 가게 되면 항상 저에게 함께 정원을 돌아볼 수 있도록 부축해달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이노비 클래스에서 제가 만든 꽃을 가지고 엄마에게 보여드렸을 때 엄마는 너무 좋아하시며 ‘예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틀 동안 처음 하신 말이었죠. 그리고 저의 볼에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을 순간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해요.”



한인 장애인 가정

이노비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들었던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다. 저소득층 한인 이민가정에서 자폐나 지체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경우가 부모가 이혼이나 별거를 하게 되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가 혼자서 살림을 꾸려나가며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한 자폐를 겪거나 지체 장애가 심한 중증장애인들은 혼자서 생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해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밖에서 일을 해야 해서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설이나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한국에서 자랄 때만 해도 장애는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었고 창피한 일이었다. 주변에 분명히 있을 장애인들이 어디론가 숨겨지고 해서 나는 자라면서 지체장애인과 시간을 함께할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3년을 같이 다닌 친구의 동생이 자폐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되고 나서야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장애인들과 가족들이 생활하기가 힘들었을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뉴욕에서 이노비에서 일하게 되면서 뉴욕·뉴저지와 미국 동부지역에 많은 장애인과 함께하며 이들의 존재와 도움의 필요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사람이고 즐거운 공연에 함께 웃고 슬픈 노래에 함께 울고 손을 잡고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장애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노비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과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연결해드리는 문화복지 비영리 단체이다. 병원이나 소외된 분들을 위해 연주 봉사를 하시길 원하시는 연주자 분들을 병원과 장애인복지관, 양로원 등으로 연결해 드리고 본인이 가진 재능을 보다 가치 있게 쓰기를 원하는 분들께 기회를 제공해 드리며 소외된 분들을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사랑을 전달해드리는 그 다리가 되어 드린다. 앞으로도 이노비는 그런 일을 계속하는 변화를 이끄는 아름다운 다리(Innovative Bridge, EnoB)로서의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많이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 할 것이다.


김재연 / 이노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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