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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글동산: 안문자(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회원)

[시애틀 중앙일보] 발행 2016/12/02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6/12/02 11:44


책에는 사랑이

주문한 책이 왔다. 어느새 박완서 작가가 가신지 5주기가 되었다. 받은 책은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으로 열 사람의 소설가들이 쓴 대담집이다.

지난 해, 4주기 때는 그분의 딸인 호원숙 소설가가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라는 추모 집을 출판했고, 열 네 명의 젊은 소설가들이 <저물녘의 황홀>이란 단편집을 출판했다. 책들은 제목부터 가슴이 아리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박완서 작가를 좋아했다. 그분의 책이라면 거의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명동의 여성기관인 Y연합회에서 일 할 때 그분을 뵌 적이 있다. 연합회 빌딩 뒷골목으로 내려가면 서울Y가 있는데 그곳을 찾느라고 연합회의 건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현관에서 고상하고도 소박해 보이는 여성과 마주쳤다. 그분은 환히 웃으며 내개 물었다. 여기가 서울 Y인가요?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교양강좌에 강사로 오신 박완서 작가님이란 것을. 아, 박완서 작가님! 하고 반갑게 웃으니 그분의 눈이 동그래지셨지. 강의하러 오셨군요. 요기, 뒤로 가면 돼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는 고맙다며 다정하게 웃으셨다. 숫기 없는 내가 너무 좋아서 용감해 졌다. 제가 선생님을 아주 좋아해요.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었어요. 그래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또 수줍게 웃으셨다.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하던지. 글에서와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일하세요? 네, 다음엔 선생님 강의 들으러 꼭 갈게요. 그는 또 고맙다며 내 손을 살짝 잡아주셨다. 지금, 그분의 따뜻했던 손길이 느껴온다.

역시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가 이민 온지 30년. 해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보내주는 친구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30권의 책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가(파키슨병을 앓고 있다) 쓴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그 전 해에는 최영미 시집인 <도착하지 않은 삶>, 그 전 전 해에는 일본의 92세 할머니 시인, 도요의 <약해지지 마>가 왔다. 이토록 정성이 담긴 30권의 책을 다 나열해 놓고 자랑하고 싶다. 30권 중 박완서 작가의 책도 여러 권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크리스마스카드 보내기로 좀 유명하다. 한국에 가면 카드 받는 즐거움과 부담을 토해내며 밥 먹자는 친구나 선배, 지인이 많다. 생일카드나 결혼기념일 카드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물론 받는 사람의 기쁨이 크지만 보내는 즐거움 때문에 나의 기쁨이 더 크다. 나를 위해서다. 절대로 잊지 말라는 협박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는 아니지만 그들도 내가 보내주는 카드처럼 빼곡히 쓴 카드를 보내준다.

30권의 책을 보내 준 친구에게 30장의 크리스마스카드와 결혼기념일 카드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책과 카드를 바꾸는 선물같이 돼버렸다. 어쨌거나 이 세상에서 매 해 책을 보내주는 친구는 아마 그 친구 단 한 사람일 게다. 한 선배는 내가 보낸 카드들을 다 모아 두었다고 하며 그 카드들을 펴놓고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준 후배가 있다고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농담도 했다. 그렇다면 30권의 책은 더 자랑거리가 되겠다.

말이 나온 김에, 고마운 그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물론 돈독한 크리스챤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검소한 생활을 한다.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한다. 붓글씨도 쓴다.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목도리와 장갑을 짠다.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인 봉사를 한다. 삶 자체가 숭고하다. 만혼이었던 가정은 행복하다. 35년 전 안개꽃 같은 면사포 속에서 다소곳하더니 연지곤지, 구술달린 족두리를 올리곤 장난꾸러기 웃음을 지었었다. 트리오로 웨딩 마취를 연주해 주었는데 엊그제 같다. 우리는 3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젊은 모습만 간직하고 있다. 못 만났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정신적인 사랑과 우정은 더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이모가 없는 나는 약간 위인 그녀가 이모처럼 느껴진다. 존경하는 친구다.

박완서 작가가 하늘나라로 가자 곧 그분의 마지막 책, <세상에 예쁜 것>이 왔다. 내가 그분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얼마나 섭섭해 할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인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책 표지에 많이 수척해지신 박완서 작가가 수줍게 웃고 있다. 다시 책을 들고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책 읽기....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어도 한 단어를 알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어느 신학자의 글에서 읽었다. 바로 그건 ‘사랑’이란 단어다. 세상에 하고많은 책들은 결국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일 게다.

삶에 대한 사랑, 자연을 향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그렇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이중에 가장 중요한 사랑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이모 같은 내 친구, 그녀가 보내준 책들과 박완서 작가의 책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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