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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문인글동산:염미숙 (한국 문인협회 워싱턴주 회원)

[시애틀 중앙일보] 발행 2017/01/03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7/01/03 10:32


디어 바바라

오늘 도모코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이 주 전에 당신의 집에 들렀다가 이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요. 당신의 새 주소를 가르쳐주었어요. 새 주소를 읽는 순간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지평선 정원’. 본인의 의사로는 결코 집을 떠나 시설로 옮기실 분이 아니기에. 몸과 마음이 더욱 약해지셨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달력을 보니 삼일 뒤가 당신의 생신이군요. 저는 오늘 당신에게 카드 대신 긴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 가족이 시애틀에 온 것은 17년 전이었죠. 남편은 공부와 일을 시작했고 저는 영어공부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죠.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웨지우드 장로교회의 영어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무척 기뻤습니다. 당신은 그 프로그램의 책임자였습니다. 주로 은퇴하신 선생님들이 수준별로 대여섯 개의 수업을 진행했지요. 당신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주로 유학생의 가족이었던 학생의 수는 점점 늘어났지요. 35번가 물푸레나무 길을 따라 교회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기대감으로 즐거웠습니다.
당신은 사려 깊은 사람이어서 막 정착한 학생들의 자녀들 소식이나 어려운 일들에 늘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주셨죠.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안부를 묻곤 했어요. 우리는 모두 당신의 기억력에 감탄했지요.
당신이 널싱홈에 있는 친구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 준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지요. 그분이 얼마 전까지도 이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분이란 말을 듣고 뵙고 싶었지요.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아기처럼 기뻐하시는 친구 분의 얼굴을 보며 오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널싱홈을 방문했던 날이었지요. 그리고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첫째 아들이 월남전에 출전한 후 젊은 나이부터 예순이 되어가는 나이까지 널싱홈에 있다는 사실을. 널싱홈에 아들을 둔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것조차 미안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당신은 유독 물과 비행을 좋아했지요. 남편이 출장 간 사이에 땅 집 대신 하우스 보트를 사버렸다며 개구쟁이처럼 웃으셨지요. 주립대학 병원에 근무하실 때는 카약을 타고 출퇴근을 하셨구요. 팔순 생일에는 경비행기로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셨지요. 어느 날은 일을 구했다며 신이 나셨지요. 그 일이라는 것은 바로 대머리독수리 인구조사였지요. 봄마다 주 정부에서 독수리 둥지 속의 알을 세는 일을 하는데 경비행기를 타고 멀미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요.
시애틀에 폭풍이 올 때 집이 많이 흔들리지 않을까 전화를 하면 언제나 씩씩한 목소리로 웃어주었죠. 혼자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으면 정기적으로 도우미가 집으로 오니 아무 염려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죠. 당신의 별명 아시지요? 용감 여사, 바바라!
오래전, 처음 제게 생일축하 카드를 보내실 땐 당신의 글씨체가 예뻤지요. 그러다가 손에 힘이 약해져 가며 글씨가 조금씩 삐뚤어질 때, 마음이 아려왔지요. 나중에는 누군가 대신 타이핑을 해준 듯 활자체로 카드를 보내셨지요. 이제는 그 카드마저 오지 않습니다.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는 때까지 카드를 보내시며 오랜 세월 저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낯선 땅, 미국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다운 미국은 ‘바바라의 미국’입니다. 당신은 이 땅을 따뜻하게 맞이하도록 제게 문을 열어준 분입니다.
당신의 하우스 보트로 다시 들어가 보렵니다. 문을 열면 딸랑딸랑 작은 벨이 울리고 당신이 미소로 안아주셨지요. 커다란 비행기 그림이 걸려있는 벽난로 옆에는 손때 묻은 말안장이 있었지요. 작은 주전자 입에선 하얗게 김이 올라오고 우리가 수다를 시작하면 당신의 고양이 징글벨이 시끄럽다는 듯 뒷문으로 슬며시 빠져나갔지요. 가끔 비버가 첨벙대는 소리도 들려오고 옆집 갑판 위엔 해오라기 한 마리가 깃털을 휘날리며 먼 데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지요.
당신은 지금 집을 떠나 ‘지평선 정원’에 계십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아득한 선 위를 거닐고 계십니다. 당신의 주소가 어디이든 당신은 언제나 사려 깊은, 용감 여사, ‘나의 바바라’입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2016년 12월 3일, 미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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