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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미 문인글동산: 이대로(서북미 문인협회원)

[시애틀 중앙일보] 발행 2017/01/03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7/01/03 10:41


유익한 고난

딸애는 열심히 직장에 나가 일하고 돈을 버는데 사위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딸은 전혀 무관심이다. 오히려 본인은 직장에 나가서 여러 사람과 섞여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데 애들 아빠는 집에서 외롭게 지내는 게 미안하단다. 생활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흔쾌히 받아들여 지지가 않는다. 주중에만 하루 대 여섯 시간씩 보는 아기들 몇 시간 더 보면 되는데, 이왕 우리가 온 바에 아기들은 우리한테 맡겨놓고 같이 나가서 돈을 벌 것이지---
학창 시절에 운동하다가 다쳤던 발목 인대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 왔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탐탁지 않았던 사위를 보는 눈은 산 넘어 산이 되었다. 어차피 돈을 벌러 나가야만 했던 형편이 아니었기에 집에만 있는 것이 별다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목에 깁스하고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그를 보니 많이 안쓰러워 보였다. 최소한 6주는 그렇게 지내야 하고 깁스를 한 왼발은 항상 심장보다 높이 받쳐 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아기 보는 시간은 자동으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저녁 늦게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허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가 없으니 바로 와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깁스하고 앉아있던 애 아빠가 일어나는 것을 부축하다가 같이 자빠지면서 밑에 깔려버린 것이다. 몸무게가 배나 되는 체구에 눌리면서 허리를 다쳤다. 설상가상이었다. 졸지에 아이가 넷이 되었고 우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해야만 했다. 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했고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는 초비상이 걸렸다.
한창 왕성하던 시절에는 하루 16시간도 거침없이 헤쳐나갔지만 은퇴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대 여섯 시간도 녹록지 않은데 13시간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긴장과 의지로 지탱하기는 하지만 몸은 맘을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무척 길기만 한 하루하루다. 무심한 것인지 모는척하는 건지, 시간만은 묵묵히 흘러갔다.
6주 예상이었던 깁스 착용 기간이 12주로 연장되었다. 도중에 자빠지기도 했고 기준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목을 심장 위로 받쳐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지 실제로 준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의사도 동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발목을 감았던 깁스를 풀게도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후유증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어렵게 지내야 하고 순간순간을 최선이라는 보완책으로 메꾸어 가야 하는 처지이지만 이젠 병상 생활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에도 가고 재활 운동도 다닌다. 아프기 전과 같진 않지만 필요한 물건 구매도 하고 식료품 가게에도 간다. 최악의 정점을 지나고 지금은 회복기로 접어들었다. 거기에 비례해서 우리의 근무 시간도 줄어들기 시작하고 피곤함도 차츰 덜해졌다. 주말이면 가끔 여유 시간도 생긴다.
잔디를 깎고 차고를 정리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요리책을 보면서 손녀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는 사위가 새삼 대견해 보인다. 전에도 그랬었지만, 전에는 그렇게 보질 못했다. 마음의 시각차였음이리라! 침울했던 집안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젠 그다지 힘들지 않다. 아이들에겐 아빠로 딸애에겐 남편으로 우리에겐 사위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어린 아기든 큰 아기든 아기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사랑의 고리가 없인 그 힘든 일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이번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가질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은혜와 보람을 느낀다. 현실은 전보다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새삼 사위가 고맙고 미안하다.
참으로 유익한 고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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