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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문인글동산: 이성수(서북미 문인협회원)

[시애틀 중앙일보] 발행 2017/01/03 미주판 0면 기사입력 2017/01/03 10:46


바르르 떨던 젊은 간호사의 하얀 손

1년에 한 번씩 하는 종합 혈액검사를 받기 위해 단골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서 피를 뽑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피를 뽑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 날카로운 바늘로 혈관을 찾아 푹 찌르고 검붉은 피를 뽑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징그러워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의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미국 간호사 아가씨가 피를 잘 뽑았다. 그 야들야들한 부드러운 손으로 혈관을 찾아 금방 아프지 않게 피를 잘 뽑았었는데, 오늘은 그 아가씨가 그만 두고 다른 미국 간호사가 들어 와서 피를 뽑았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서툴러서 쩔쩔 매었다. 혈관이 질기고 밀려서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바늘만 대면 혈관이 숨어버리기 때문이라 했다. 그 간호사는 여러 번 왼팔로 시도해 보다가 안 되어, 오른 팔의 혈관을 수차 찔러 봤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주사 바늘을 찌른 나의 팔 부위는 여러 곳에 검게 멍든 것처럼 변했다. 나중에는 현기증까지 났다. 결국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한국 간호사가 와서 “손님! 간호사가 새로 와서 그러니 죄송하지만 큰 병원에 가셔서 피를 뽑아야겠네요.” 라고 사무적인 말을 하였다. 아침을 굶고 찾아 왔는데 여기서 먼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채혈 리스트 용지를 건네주는 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먼 종합병원에 가기가 싫어서 내친김에 딴 병원을 찾아갔다.

새병원에서 기다리는 중에 많은 한국 교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같은 교회를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타 교회로 간 성도들을 만나, 반가워하고 서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며 친교를 할 수 있어 이곳이 교포들의 만남의 장(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원장이 마침 선교 여행 중이라 한국말을 못하는 2세 젊은 의사가 진료를 해 주고 예쁘장한 젊은 간호사가 통역을 유창하게 해 주었다. 작은 방에서 통역을 한 간호사가 나를 맞았다. 그녀는 나의 팔을 반쯤 걷어 올리게 하고는 그 아래를 고무줄로 살짝 묶고는 정구공만한 말랑말랑한 작은 고무공을 손아귀로 쥐게 한 다음, 부드러운 집게 손가락과 둘째 손가락 끝으로 주의하며 조심스레 손등과 손목의 혈관을 더듬어가며 찾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촉각을 곤두세워 바늘 꽂을 장소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나의 손목 위를 더듬어 내려가는 부드러운 간호사의 손끝의 감각이 꿈속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어떤 지점에 오자 나는 갑자기 몸 전체에 힘이 빠져 나른하고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꼈다.

그 순간 때를 같이 하여 느리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가락이 정지하였다. 그리고는 재 빨리 그 장소의 표면을 알코올로 소독한 다음 능숙하게 힘 안들이고 주사바늘을 찔렀다. 날카로운 바늘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 채우듯 숨어있는 혈관을 찾아 단 한 번에 꽂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 을 다 해서 혈관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고 몇 번이나 실패했던 전 병원의 간호사 생각이 났다. 그 앳된 간호사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흥분되어 있었고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던 젊은 간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그녀의 하얀 오른손이 바르르 떨고 있던 그 모습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이 병원의 간호사는 신기하리만큼 너무나 쉽게 채혈 )을 한 셈이다. 잠시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검붉은 피가 주사바늘을 통해서 작은 유리 시험관에 모아졌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을 빼어 그 즉석에서 당뇨와 콜레스테롤 수치를 측정하는 기계에 넣으니 금방 결과가 나왔다.
“당뇨는 없고 콜레스테롤도 정상입니다. 축하합니다. 나머지 혈액검사결과는 2~3일 후에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아주 친절하게 말하는 예쁘장한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고맙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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